“아빠, 난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될래요.”

by 희주

언양읍. 내가 자란 시골, 나의 고향이다.

20년을 살았던 집은 1층은 벽돌, 2층은 조립식으로 지어진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이였다. 그 집에는 3대가 함께 살았다. 대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는 꽤나 경사진 오르막길이 있었고, 그 오르막을 오르면 왕복 2차선의 도로가 나타났다. 그 도로 건너에는 태화강으로 이어지는 큰 강줄기가 있었다. 어릴적, 주말이면 아빠는 커다란 그물을 어깨에 척 걸치고는 양동이를 든 나와 동생을 데리고 그 강가로 향했다. 이불만 한 그물을 강물에 던지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푸드덕, 하고 잡혔다.

그러고 나면, 그날 저녁은 엄마가 만들어준 산초향이 진하게 풍기는 추어탕을 먹곤 했다.


그 집 2층 창문들은 대부분 강을 향해 뚫려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창을 열때도,

TV를 보다 고개를 돌려도,

우두커니 서서 양치질을 하다가도,

시선이 닿는 곳은 늘 그 강 너머,

사람이 살지 않을 것만 같은 풀숲이였다.


그 곳에는 무성하게 제 멋대로 자라난 풀들과

어느 한켠, 홀로 우두커니 선 커다란 버드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릴때면 그 나무는 가녀린 가지들을 한껏 늘어뜨리고는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춤을 추었다.쉬이- 쉬이- 느리고 평화롭게,

때로는 화가 난 듯 거칠게.


고작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곳임에도 그 곳은 어린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미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자주 상상했다.

그 나무 아래엔 비밀 통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주 작은 요정들이 모여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열세 살 여름의 끝무렵,

‘초강력 태풍’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태풍 ‘매미’가 남부지방을 강타했다.

새벽 내내 바람은 지붕을 날려버릴 기세로 세차게 불어닥쳤고, 강물은 도로 가장자리까지 불어나 넘실댔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두려움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뜬눈으로 지샌 아침. 풍경은 전날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로수가 뿌리 째 뽑혔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의 창문은 군데 군데 깨져 있었다. 집 앞 마당엔 어디서 날아온건지 알 수 없는 파편들이 이곳저곳 널려 있었고, 집의 지붕 일부가 날아가버려 어른들은 보수 공사를 알아보느라 분주했다.


나는 2층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그 나무가 걱정이 되었던거다. 홀로 선 그 나무.

그리고 이내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다행히 그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다.

부러지지도, 뽑히지도 않은채.

그 강력하고도 매서운 바람을 견딘 채 그 자리에.

마침 곁에 있던 아빠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 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될래요”


아빠는 그냥 말없이 웃으셨다. 시덥잖은 소리라고 생각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열세 살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외롭고 슬퍼도

그 자리에 소명한 그대로 서있는 그 나무가 멋져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자랐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오고, 고등학생이 되고

수능 준비에, 미술 실기 준비에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고 어둠이 내린 밤이 되어서야 가로등 불에 의지해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나무의 존재는 나에게서 희미해져갔다.

그 나무는 내가 자기를 잊은지 조차 모른 채 그 자리를 지켰겠지.


지금에 와서야, 문득 조금의 후회가 든다.

그때, 한번쯤은 용기를 내어 그 곳에 가봤으면

좋았을텐데. 그래서 그 나무를 손으로 만져보고,

한아름 안아도 볼 걸. 매일 널 지켜봤다고,

넌 혼자가 아니라고 조용히 속삭여 줄 걸.


그리고 8년전,

그 나무는 아파트 착공을 위해 벌목되었다.

지금 그 강 너머, 그 자리에는 아주 견고하고도 높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제는 그 집 2층에 올라가면 이름 모르게 푸르던 잡초들과 바람결을 따라 춤추던 느티나무, 그 뒤로 천천히 물들던 저녁의 빛이 아닌 하얀 콘크리트에 네모난 창이 수십개가 달린 높디 높은 건물만이 시야를 채운다.

쓸쓸하고도 슬픈, 조금은 아픈 마음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