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가 맛있다고 라면이 맛없는 건 아니잖아.

주의! 음식 이야기는 아닙니다.

by 희주



‘파스타가 맛있다고 라면이 맛없는건 아니잖아.’


이 문장은 끝없는 비교와 자기 혐오에 지쳐있던 어떤 날 아무런 맥락도 없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싱겁게 웃었다. 처음엔 그 말이 위로를 가장한, 자기 합리화라 생각했다. 어쩌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문장을 방패처럼 꺼내 들었는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나를 부정하고 미워하는 순간을 마주할때마다 이 이상한 문장을 떠올렸다.


우리는 누구나 때때로 한없이 작아지는 날을 경험한다.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와 나를 끊임없이 견주어 가늠하고, 스스로를 갉아먹는 그런 날. 그럴때면 우울감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잠식 되어, 부정으로 가득찬 마음의 심연에서 아무리 높게 손을 뻗어보아도 구해주는 이가 없다. 나는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이 깊은 침전은 어디서부터 시작 되어 왔을까.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수많은 것들과 마주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평범한 나의 방. 내 침대에 누워서도 아주 먼 곳의 삶과 빛과 그늘을 본다. 하지만 편리함이라는 말로 정당화된 ‘이 세계’는 생각보다 쉽게, 지켜야 할 거리를 상실하고 선을 넘는다. 그럴 때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체 없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흔들고, 나는 방어할 틈도 없이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누군가의 성취가 나의 ‘초라함’으로 다가올 때나,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진 누군가에게 ‘질투’라는 감정을 느낄 때. 또는 각자의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답’만을 쫓으려는 나를 깨달을 때, 이 문장은 비로소 본래의 힘을 갖는다. 나는 그럴때마다 어지러이 부유하는 영양가 없는 생각의 조각들에 중력을 부여하고, 맑아지는 정신으로 이 문장을 되뇌어 본다.


‘파스타가 맛있다고, 라면이 맛없는건 아니잖아?’


그러면 순간 나를 삼킬듯 몸집을 키우던 모든 불안과, 번뇌와, 혼란은 그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마치 상념에 사로잡힐때 도움이 되곤 하는 ‘인간은 우주의 먼지다’와 같은 구원의 문장처럼.


나는 이제 알것같다. 이 말은 위로를 가장한 합리화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꺼내든 방패도 아니라는 걸. 그저, 누군가는 가진것이 ‘파스타’일 수도, 나는 ‘라면’일 수도 있다는걸 담담히 인정하는 태도이자, 높게 뻗친 손을 주저 없이 잡아주는 구원의 손길이라는 것을. 그러니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고.

익어가는 속도도, 레시피도, 고유의 맛도.


그러니 당신이 가진것이 ‘라면’이라 할지라도,

당당히 외치자.


‘파스타가 맛있다고, 라면이 맛없는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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