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히지 않을, 도쿄의 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4월의 봄.
나의 첫 해외는 회사에 입사한지 반년도 채 안된 시점,
갑작스레 떠났던 두달간의 도쿄행 출장이였다. 당시의 나는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갓 스물넷이였다.
하네다 공항을 빠져나온 버스는 시부야를 향해 달렸다.
창 밖으로는 도무지 읽히지 않는 간판들과 익숙한듯 낯선 사람들,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도시의 풍경이 스쳐지났다. 그 낯섦을 반짝이는 눈으로 조심스레 더듬던 순간의 떨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첫 발을 디딘 시부야.
드라마에서나 보던 커다란 교차로가 실제로 존재했다.
신호가 바뀌자 사람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와 한가운데를 가득 메우고는 순식간에 사라지길 반복했다.
빌딩마다 빼곡히 걸린 전광판에는 그 시절 유명했던 카메나시 카즈야, 아라시 같은 익숙한 얼굴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했고, 그 중심에는 시부야 109가 당당히 서있었다. ‘내가 바로 시부야야!’ 라고 말하듯.
요즘은 시부야 스카이나 로프트처럼 위용을 과시하는 새로운 랜드마크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 시절 109는 단연 시부야의 상징같은 존재였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이어져 온 내 모든 여행의 시작점은 아마 그때의 도쿄였던 것 같다.
출장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사실 매일을 여행자처럼 살았다.
대단한 여정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 담아 온 감정의 밀도가 꽤 묵직하다.
모든 게 처음이라 매일이 낯설었지만 그 속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봤고, 그때의 시간들이 내 안의 어떠한 결을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롯폰기의 작은 레지던스에 머물렀다.
그 방의 침대 맞은편 테라스 창에는 매일 밤 붉게 빛나는 도쿄타워가 선명히 보였다.
하루를 끝내고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두눈 가득 들어차던 까만밤의 도쿄타워는 ’오늘도 수고했어‘ 라며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그때 함께 출장을 갔던 3살 터울의 동료와는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됐다.
가끔 만나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시시콜콜 그때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잊고 있던 시간들이 불쑥, 눈앞에 앉는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향하는 초입에서 만났던 도쿄의 봄은 긴장으로 굳은 나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거리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고,
히카리에까지 출근하던 매일 아침은 포근한 봄바람이 함께 했다. 이따금 내리는 봄비도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은 현지 동료들과 관광객 하나 없는 로컬 식당에서해결했고, 퇴근 후엔 괜히 버스를 타지 않고 숙소까지 한참을 걸었다.
마침 그때 발매되었던 ‘봄 사랑 벚꽃 말고’를
두달 내내 들었다. 질 릴 때까지.
덕분에 지금도 어디선가 그 노래가 들리면
시부야에서 롯폰기까지 향하던 퇴근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 속에서
그때만큼 모든게 요동치던 시기가 또 올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는 안다.
그 봄은 내 안에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
요즘 처럼 벚나무가 하나 둘 봉오리를 터트릴때면
그때의 봄과 그 시절의 내가 많이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