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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Sep 25. 2023

휴직의 절반이 지났다

휴직 29주 차 기록

 



(24년 3월 말 복직이라는 가정 하에) 살면서 쉬어본 적 없는 나의 휴직기간 절반이 지났다. 시간이 빠른 것 같기도 하고 알맞게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첫 마음대로 잘 해온 것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보냈더라도 약간의 후회는 남을 것이라고 합리화하니 다행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남은 날들이 소중해지는 만큼,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나름의 중간점검을 해 본다.



<지나온 시간>

1.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사람이 되었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유독 부정적인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게으르게 살 수도 없었지만, 그렇게 살 용기도 없었다. 회사에서의 내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내 스스로를 우선적으로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아이를 갖겠다고 마음먹은 것, 그래서 휴직까지 감행한 것. 이 과정들이 과연 잘한 행동일까 수 없이 반문했다. 그런 잔잔한 불안 속에 온전히 게을러지기까지도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게으름의 기준도 상대적이겠지만, 내 기준으로는 그 간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과 비교해서 지금이 제일 게으른 순간이 아닐까 싶다. 당장 급한 것도, 무언가를 반드시 해내야 할 것도 없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된다. 가능한 한 더 게으르고 싶다.


게으름은 동시에 비효율을 가져왔다. 기본적인 텐션이 줄어드니 어떤 일이든 속도가 느려졌다. 출근전쟁으로 몸만 쏙 빠져나왔던 침대 위 이부자리는 이젠 아침마다 반듯하게 정리한다. 건조기에 며칠방치해 두었던 빨래들은 이젠 하나하나 느릿느릿 개고, 청소기도 제일 약한 세기로 천천히 민다. 스킨로션도 세월아 네월아 꼼꼼히 바르고, 머리도 물기 있는 부분 없이 바짝 말린다. 비록 느리고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순간 집중도는 높아졌다.  


그 간 끊임없이 효율만을 추구했던 나와, 6개월 간 비효율로 살아본 나. 두 방식의 옳고 그름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언젠가 육아를 하고, 복직을 하면 다시 효율적인 나로서 살아가겠지만, 바쁜 일상에서도 지금의 내가 느껴온 여유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2. 꾸준한 것들이 제법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사람이 되어가며, 꾸준하게 하는 것들이 제법 많아졌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걷어내고 나니, 넘쳐나는 시간과 함께 이전보단 느리지만 성실하고 꽤 단단한 습관들이 자리했다.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삶에 의구심이 들 때쯤이면 '그럼에도 꾸준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진심으로 위안을 주었다.


토마토를 빠짐없이 갈아먹는 것, 월수금 요가 클래스에 매일 참여하는 것, 관심이 가는 분야의 읽을거리를 꾸준히 놓지 않는 것, 한 주의 경험과 생각을 브런치 글로 남겨 두는 것. 걸어서 1시간 내에 갈 수 있는 거리는 되도록 걷는 것. 명상이든 독서든 고요한 시간을 자주 가지는 것.


사소하고도 사소한 것들이지만 꾸준하니 성취감이 생긴다.



3. 많이 자고, 잘 먹었다.

어제에 대한 집착, 내일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 편히 잠자리에 누워 본 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휴직 전엔 현재를 살지 못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씩은 불면에 시달리긴 하지만, 찹찹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가 잠깐 들어버리는 낮잠에도 더 이상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닌 날도 간혹 있지만) 비교적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난잡한 꿈들도 덜 꾸게 됐다.


유지해 오던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어난다 싶으면 확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162.6cm, 53.5kg.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표준체형이지만 마음 한 켠의 '살찌면 어쩌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 놓고 먹어본 적이 잘 없었던 것 같다. 휴직을 하고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고, 예전에 비해선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먹고 있다. 생리주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몸무게가 1~2kg씩 까지도 왔다 갔다 하지만, 숫자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요즘 나의 건강한 습관과 꾸준한 노력들을 믿기에. (사실, 어차피 평생 다이어트다.)



4. 대부분 만나지 않았지만, 전부를 만났다.

모든 관계를 이어나갈 힘도 남아있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친절하게 하기도 싫어지면서, 휴직 후엔 주변인들과 그에 따른 각종 연결로부터 간절히 벗어나야겠다고 느꼈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왔던 (잘 지내는 척했던) 나는, 모난 돌 마냥 자발적 고립을 선택했다. 연락처를 정비하고, 카카오톡 알림을 껐다. 정말 필요한 연락 외에는 지금도 자주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세상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타인 의존도가 높았던 것 같다. 불안한 일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정서적으로 독립하려는 마음이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 타인과의 소통이 버거워져서 고립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내가 가진 타인에 대한 의존도나 기대를 조금 낮춰보기 위함도 큰 이유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해결책과 확신이 항상 곁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돌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기에.


이런 이유로 대부분을 만나지 않은 것은 맞다. 그 대신,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오랫동안 카톡으로만 연락만 하고 지내던, 보자고 말만 했지 언제 만날지 기약도 할 수 없었던, 보고 싶었던 지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내가 상대적으로 여유로우니 지인들이 있는 쪽 까지 갈 수 있어 좋았다 (가는 김에 여행도 하고), 학창 시절 친구들, 리포터 친구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할머니, 감사한 선생님까지. 각자 삶의 속도와 방향은 다르지만, 지금 보면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함께 보낸 시절과 그때의 나를 기억해 주는 마음들이 고마웠다.  



5. 나의 한계를 잘 느꼈다.

나는 사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굉장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어떤 집단에서든 '어느 정도는 잘 해내는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유지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곧잘 했고, 그 감정이 이어져 살아가며 겪는 업무도, 인간관계도, 새로운 배움도 마음만 먹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내 실력이나 역량보다 더 높은 곳에 있고 싶어 하면서 그것을 유지하느라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취업을 할 때도, 회사 업무도, 대학원도 그랬다. 어떻게든 해 내긴 했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실력 탓에 잘 해내기는 어려워 늘 여유 없이 허덕였다.


인간관계도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별로다. 이제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지만, 어려서는 모든 사람을 맞춰주며 분주하게 살았다. 20대 때부터 좁은 인간관계를 유지했던 친구들은 이미 지금의 내 마음을 깨달은 것일까. 넓게 퍼져있던 관계에선 더 많은 기대로 인해 실망과 상처가 생겼고, 지금도 더 덜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새로운 배움도 마찬가지. 기타, 요리, 꽃꽂이를 배우며 매일매일 한계를 느꼈다. (진짜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쉬면서, 더 잘 들여다보며, 나의 수많은 한계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분명 내가 잘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족하고, 많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 들이었음을. 노력한다고 다 이룰 수 없지만, 노력해서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한계에도 기대하기보단 의연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시간>

1. 아이를 갖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할 것

내 휴직의 목적은 '난임휴직(feat. 무급)'이다. 다 잘해 낼 엄두가 없었을 뿐인데,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노산'과 '난임'이 되어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이 되는데, 나는 이 단어가 왜 이렇게 싫은지 모르겠다. 그냥 '늦은 임신' 정도로 표현하면 안 되는 건가)


'남들 다 하는 출산과 육아일 뿐인데도 아이를 갖겠다는 고작 이 자연스러운 마음 하나 먹는 데까지 이렇게나 오래 걸렸던 나란 사람. 아이 낳을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지는 겁쟁이. 나름 동안이라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제 나이를 알려주는 피부와 모공과 새치들. 다들 어쩜 그렇게 잘 해내는 걸까. 아 정말 출산과 육아를 내가 해 낼 수 있긴 한 걸까' - 지나온 절반의 시간까진 분명 이 정도 마음으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앞으로 남은 절반의 시간의 앞에선,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상상만 하는 일들이,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가 엄습해온다. 무엇이든 의식적으로 되는 순간 부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임신에 대해 '노력, 준비'라는 단어를 금기어처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정말 노력이란 단어를 꺼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루틴을 유지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되, '조금은 더 건강하게 먹기, 몸 따뜻하게 하기, 미리 걱정하지 않기'만 잘해도 좋을 것 같다. 과거 자궁출혈 이력 때문에 시술받기가 무섭긴 하지만, 필요하다면 받아야 할 테고. 하지만 그전에 자연임신이 잘 되면 좋겠다.



2. 이젠, 제대로 된 취향을 찾고 나잇값을 하자.

며칠 전, 회사 동기들과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았다. 나는 웜타입 중에서도 '가을딥을 끌어다 쓰는 가을스트롱 타입'으로 진단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은 제니, 김희선, 한고은이 있단다. 뭔가 선명하고 또렷한st ) 내가 가진 립 컬러들은 가을웜과는 맞지 않는 형광빛이 감도는 쨍한 컬러들이었다. 허여멀건한 파스텔톤도 나에겐 극악.


이제 만으로도 서른여덟이 되었지만, 말투, 옷차림, 심지어 화장법도 나잇값을 잘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옷장, 화장품 등을 가지고 있을 텐데, 난 지금까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옷과 화장품은 죄가 없지만 그동안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내가 좋은 것만 하고 다녔던 화장법, 옷차림들로 한창 예쁠 때 제대로 못 꾸몄다고 생각하니 새삼 울적한 감정이 든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가 있나'는 타짜 영화 대사가 생각나는군)


평생을 즐겨 입을만한 옷, 내 이목구비의 장점을 잘 보이게 만들어 줄 화장법을 조금 더 차분히 찾아보고 싶다. 1~2년만 지나도 후줄근하게 쓰레기가 되어있는 옷들을 버릇처럼 당근에 내다 파는 프로세스가 아닌, 시간을 들여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고, 제대로 된 취향을 발견하고 싶다. 어려보인다는 말 한마디에 호들갑 떨며 기뻐하지 않고, 내 나이에 맞는 외모와 마인드를 가지는 것.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 와중에 옷장을 보니 화가 난다. 분명히 작년에는 예뻐서 구입했는데 왜 옷들이 쓰레기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다.)



3. 심리상담 종료하기

정서적 독립을 위한 목표다. i can control myself.



(아니길 바라지만) 이번이 지나면 당분간은 없을 나의 쉬는 시간. 지금의 하루하루는 '아무래도 진심으로 정말로' 소중하다. 남은 휴직 시간을 잘 채워가야지.



* 휴직 30주 차 기록부터는 '쉬어본 적 없는 나의 휴직생활 2'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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