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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Apr 12. 2024

학대를 일삼는 학교, 그곳에 갇힌 아이들

더 프로그램: 사기, 컬트, 납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 범죄 (스포 많습니다)


2024년 3월 5일 공개된 <더 프로그램: 사기, 컬트, 납치>를 봤다.


청소년 교정 시설이라고 광고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학대하는 그 학교에 부모들은 수천만 원의 교육비를 냈다. 그곳에서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감금된 채 청소년기를 지낸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서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대부분이 PTSD에 시달리고 있고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 이들도 40여 명에 이른다.


이 다큐를 만든 감독, 캐서린 퀴블러는 '아이비 리지 아카데미'에서 15개월을 감금 상태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던 입소 경험자이다. 영화감독이 지망생인 그녀는 이 시설의 실태를 고발하고 아직도 이런 학교들이 선전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있는 '아빠'에게 지옥 같았던 그곳의 실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다큐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의 부모들이 학교 측의 사기행각에 세뇌되어 여전히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이비 리지 아카데미는 교육청의 정식 인가를 받지 않은 가짜 학교다. 수천만 원의 학비를 받으면서 컴퓨터 앞에서 혼자 공부하는 온라인 수업만을 진행했다. 정식 선생님 자격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때 그 졸업장이 쓸모없는 종이조각이었음을 알게 되어 결국은 검정고시를 쳐야 했다는 학생의 증언도 나온다.




창밖을 쳐다볼 수 없고 건물 밖은 나갈 수도 없으며 친구들과 눈도 마주치면 안 되고 심지어 방귀도 허락을 받아야 뀔 수 있는 등 온갖 사소한 행동 규칙들이 수백 개다. 그리고 그 규칙들을 어길 때마다 벌점이 쌓였고 믿기 어려운 지독한 처벌들을 받았다. (처벌 방법은 방송에서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내가 눈물이 핑 돌았던 부분이다.) 이렇게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가두고 때리고 바닥에 짓누르고 또 입에 담을 수 없는 벌칙 등으로 온갖 학대를 자행하면서 아이와 부모 사이의 교류를 차단했다. 그리고 밖에서는 부모들을 가스라이팅 시켜서 이 학교가 주장하는 교육법과 교육관을 그대로 믿게 만들었다. 부모와 적절한 교류가 막힌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쌓아가면서 막막한 심정으로 졸업할 날만 기다려야 했다.





아이비 리지 아카데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운영되었던 기숙학교인데 내 아이가 문제가 있어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비싼 돈을 내며 보내는 곳이었다. 부모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학대가 벌어지는 곳인 줄은 전혀 몰랐다. 학교에서 커미션을 받고 있던  주변 사람들의 소개를 믿었고, 규율을 지키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훈육을 잘하는 곳이라는 학교의 광고를 믿었다. 나중에 실상을 알게 된 부모들은 후회와 자책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학교생활로 트라우마를 지닌 채 성인이 된 자녀와의 관계는 회복하기 어려웠다.





내가 이 다큐를 보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가슴 아팠던 부분은 

이런 학교들이 지금도 여전히 운영 중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비 리지 아카데미는 WWASO(World Wide Association of Specialty Program and Schools)라는 거대한 사업 아래에 있는 학대 청소년 교정 시설 중 하나였다. WWASO는 미국과 멕시코 전역에 25개의 학교를 만들었고 만약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그곳을 폐쇄하고 다른 시설로 아이들을 옮기거나 또는 잠시 휴지기를 두었다가 새 이름으로 학교를 다시 오픈하는 식으로 지금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대부분의 거대 사업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불법임이 명백해도 여전히 운영된다. WWASO도 공화당 선거비용을 대주며 주 세력들의 보호를 받아 사업을 확장해 갔다. 



<더 프로그램>과 비슷한 내용의 다큐. 문제아 훈육을 빙자해서 아이들을 유타 사막 한가운데에서 학대한다.


예전에 보았던 다른 다큐가 생각났다. 2023년 12월 31일에 넷플릭스에 공개한 <헬 캠프: 청소년 지옥훈련소>이다. 패리스 힐튼도 피해자였던 야생 치료 캠프라고 했다. 현재 미국에서 이런 유의 청소년 학대 프로그램들이 이토록 공공연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헬 캠프의 피해자였던 패리스 힐튼이 아이비 리지 아카데미 일일 체험 중이다





2009년에 폐쇄되었던 학교에 입학 서류와 아이들이 작성한 반성문 등 많은 증거물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을 토대로 다큐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몇몇 졸업생들은 그들의 서류를 없애 달라고 했단다. 기억을 지움으로써 상처를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과 기억을 더듬어서 상처를 의식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다큐에 나오는 피해자들은 후자이다. 나는 상처를 드러내야 제대로 치유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한 톨도 남김없이 다 파헤치고 들어내서 그들의 깊은 상처에 단단한 새 살이 돋기를 응원한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다큐인데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가짜학교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청소년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런 지옥 같은 환경 속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무섭다. 


수개월~ 수년 동안 감금되어 청소년기를 보낸 피해자들이 학교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모였다                                


이런 시설에 현재 아이를 보내고 있거나 앞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모든 부모들의 눈과 귀가 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단체가 살아남지 못하도록 미국 정부가 강력한 법안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돈과 정치의 단단한 결박 속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이 고통받고 있다.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학대를 일삼는 학교, 그런 곳에 내 아이를 보내는 부모 그리고 올바른 시설이 아님을 알면서도 방치하는 정치인들. 삼박자가 맞아 돌아가는 이 미친 고리를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는 다큐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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