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좋은 것 중 한 가지는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해가 중천에 떠도 침대 속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람 없이도 저절로 눈이 떠지고, 눈을 뜬 후에는 침대에서 뒹구는 시간이 아까워서 벌떡 일어나게 된다.
오늘도 하루를 일찍 시작한 덕분으로 비가 오기 전에 벚꽃 구경을 다녀올 수 있었다.
캐나다 밴쿠버의 리치몬드 시에 위치한 게리 포인트 공원.
https://maps.app.goo.gl/WRq7qpecaYC4kv2D7?g_st=com.google.maps.preview.copy
https://www.richmond.ca/parks-recreation/parks/parksearch/park.aspx?ID=17
작년에 처음 이곳에 벚꽃 구경을 왔었는데 그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올해도 꼭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벚꽃 만개 소식이 들려와 일요일에 가기로 했는데 비 예보가 있었다.
우산을 쓰고라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창밖의 주룩주룩 빗소리가 올해는 벚꽃 나들이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아쉬움을 담고 잠자리에 들었었다.
아침에 거실로 내려간 남편이 지금 비가 그쳤다면서 오늘 오전 11시부터 비가 올 예정이란다.
서두르면 비가 오기 전에 꽃 구경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하고 8시 좀 넘어서 집을 나섰다.
9시 즈음에 도착한 공원은 흐린 하늘 아래서 만개한 꽃들이 향기를 뿌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오늘 열릴 벚꽃 축제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왼쪽 사진, 2024년에 왔을 때는 파란 하늘이 만개한 벚꽃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오른쪽 사진, 2025년 오늘 하늘은 구름이 짙게 가리고 있었다.
11시부터 내린다던 비는 9시 30분 즈음부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의 향연을 눈으로 가득 담을 수 있었음에 만족하면서
파란 하늘이 빠진 꽃 잔치도 참 좋았다고 남편과 이야기 나누면서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오늘 축제를 준비한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싶었고, 이 비가 쏟아지기 전에 벚꽃 구경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다.
"파란 하늘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예쁜 꽃들을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좋았어"라고 내가 말하니
"나는 울 마눌을 눈에 담고 왔어~"라고 남편이 말해서 웃음이 빵 터졌다.
'자기한테는 내가 꽃이었네~'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남편의 예쁜 말이 행복한 순간을 선물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A&W에 들려 아침을 먹었다.
요즘 트럼프의 관세 폭력 때문에 캐나다 시민들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졌다.
캐나다 제품을 이용하자는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상품마다 어느 나라 제품인지 강조해서 적어둔다.
여기 A&W 도 Canadian 회사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미 은퇴할 나이를 지났을 것 같은 할머니가 주문을 받으셨는데 그분의 서비스 태도가 너무 훌륭해서 깜짝 놀랐다.
주문한 음식이 조금 늦게 나오니 굳이 우리 테이블까지 오셔서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기도 하고,
음식이 서빙될 때는 미안하다며 사과파이를 서비스로 가져 오시기도 하고,
땅콩버터나 잼이 필요하냐고 물은 후 냅킨과 함께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이런 서비스는 생전 처음 받아본 거라 놀랍고 황송한 마음이었다.
‘친절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고
<칭찬 칠판>이 있다면 그분의 이름을 적고 별 백만 개를 그려드리고 싶었다.
꽃구경도 즐거웠는데 나들이를 마무리하는 이곳에서도 너무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되어서 행복했던 하루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