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다. 그게 무엇이든, 항상.
"지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앞으로 얻을 것에 집중해라."
아주 오래 전 누군가 저에게 해주었던 말이에요. 그리고 이 문장은 이따금씩,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마음에 두둥실 떠올라요. 2025년의 9월을 맞이한지 한 주가 지나가는 지금, 이 문장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글쎄요, 10년 전의 저라면, 어김없이 찾아온 이 문장과 함께 뭐가 문제인건지 저의 상황을 분석하려고 했을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의 저는 이 친구를 앞에 두고 있자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잃어야 하나?
'잃는다'는 단어, 참 슬퍼요. 그쵸.
왜 이 '상실'의 감각이 슬픈지에 대해서는 뇌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들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설명들을 통해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는것 같아요. 이럴 때 보면 참,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선택하고 이해하는 때가, 사실 정말 많은 것 같거든요. 아마도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고, 모아놓고 보면 알록달록 요지경인 이 경험들의 합이 현재의 나이기 때문일까요. 그 경험들 중에서도 '이별'이 잃는다는 감각과 가장 가깝겠죠. 그 순간 가장 소중했던 인연들과의 이별, 정들었던 공간들과의 이별, 많은 추억들이 깃들어 나의 일부와도 같은 물건들과의 이별 등등. 자의든 타의든 이별을 하게 되면 그 존재를 내 삶에서 잃게 되죠. 어디엔가 흔적은 찾을 수 있을지언정, 이 또한 무척 노력하지 않으면 사라지는것 같아요. 있었지만, 없습니다. '상실'
그리고 저에게 가장 많은 '상실'을 경험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에요. 왜냐. 저는 살아오면서 조금씩 그때 저의 일부를 항상 잃어버렸거든요. 물론 자의였던 때가 훨씬 많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는 매 순간 변하는 이 세상에서, 진짜 한 번 사는 인생 아주 기깔나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인지 항상 현재의 나의 못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저 자신에게 불만이었죠, 부족해보였거든요.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그래서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위하여 (치얼스). 그때 그때 욕심껏 시행착오들과 함께 열심히 다듬어왔고, 그 덕분에 수많은 과거의 부족해보였던 제 모습들과 '이별'하며 '상실'을 경험했죠. 완벽하진 않지만, 모든 걸 다 성취하진 못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저는 제가 참 좋아요. 그래서일까요. 저 마법의 문장이 떠오르니, 조금 이상하더군요. 나는 지금 내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처음으로 이 문장을 곱씹어봤어요. 그러다 보니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문장에서 말하는 "잃는다는 것"은 뭘까? 그게 과연 '상실'일까? 이 특수한 맥락에서의 '잃는다'의 정의(definition)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이거슨 직업병) 그리고 저의 결론은 이 문장에서의 '잃는다'는 '상실'의 동의어가 아니다. 애초부터 이 말을 알려준 분의 의도는, 어린 시절의 제가 앞으로 삶을 살아가며 당장 무언가를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 앞에서 움츠러들거나 소극적으로 살아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해준 말이었거든요. 저는 사실 타인들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쓰고 갈등과 튀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아이였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지인들에게 저에 대해 물어본다면 "한다는 하는 행동파 쌉T"라고 말할거에요. 네, 이제는 여러모로 단단해졌나 봐요. (그나저나 왜 '쌉T'라는 단어는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까요? 뭔가 어감이 잘못되었어요. 이 단어)
지금 제가 생각하는 이 문장의 '잃는다'는 '상실'이 아닌 '투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우상향하는 삶의 그래프를 그리고자,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선택한 오늘의 투자라고나 할까요. 현재 '잃는 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특정한 '인연' 또는 '경험'이 될 수 도 있겠죠. 이 모든 것들을 더 자주 행복을 느끼는 나다운 삶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이건 없어지는 또는 놓치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한 전략적 선택이 될거에요.(단, 자의로 선택할 수 없는 이별과 상실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이렇게 변화된 시각으로 저 문장에 살을 좀 더 붙여보자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앞으로 얻을 것에 집중해라. 그게 바로 너답게 성장해가는 삶을 위한 열린 마음가짐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완전 곡해했습니다. 옙. 반성.
물론 잃어야 얻을 수 있을 때가 있죠, 비워내야 채울 수 있는 것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저는 모든 것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하는 마법의 영어 표현 'It depends' 입니다. 그래서 바뀐 점이 있다면, 저는 지금 '잃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시선을 거두고, 정말로 '얻을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내가 지금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잃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많이 컸다, 나 자신. 이렇게 보면, 나이 드는 것, 나쁘지 않아요. 결국, 잃는다는 것 그리고 얻는다는 것, 나의 선택과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