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획 및 운영 실무자로 재직 중일 때 내 돈을 기꺼이 지불하며 챙겨본 어플이 있다.
바로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유료 콘텐츠 플랫폼 PUBLY(이하 퍼블리)다.
다른 주변 사람들도 퍼블리를 구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중에는 조직 내에서 능력을 크게 인정받는 사람의 비중도 상당하다. 퍼블리를 향해 그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 일을 할 때 도움이 되는 양질의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콘텐츠 산업은 오래된 역사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낯설지 않은 산업 분야이다. 그만큼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받기도 하고, 독자의 성향에 따라 평가의 기준이 매우 달라질 수 있는 까다로운 분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 '콘텐츠'를 기반으로 어떻게 퍼블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었는지, 그 탄생 배경을 Product Development Life Cycle(제품 개발 생애 주기) 방향에 맞춰 알아보고자 한다.
퍼블리가 발견한 '가속화된 미디어의 디지털 유료화' 시장
네이버는 '프리미엄 콘텐츠'를 출시했고, 중앙일보는 '폴인(fol:in)'을 선보였다. 그리고 아웃스탠딩, 북 저널리즘, 글리버리 등 다양한 뉴스레터들이 프로덕트로 탄생되고 있다.
이러한 프로덕트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유료화 구독형 미디어 콘텐츠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무료로 제공되고 있는 뉴스레터 프로덕트들도 계속 유료형으로 전환 중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 전달 콘텐츠인 뉴스는 많은 소비자들에게 '공짜'로 인식되어왔다. 뉴스 콘텐츠를 대중들이 무료로 접할 수 있던 이유는 수익을 소비자가 아닌 광고를 통한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은 '언론사의 콘텐츠를 신뢰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 왔다.
특히 인터넷과 포털이 발달하며 무분별하게 공급되는 뉴스 콘텐츠들에 대한 신뢰도의 의문 제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였다. 뉴스 콘텐츠를 구독하기 위해 소비자가 직접 돈을 지불하도록 하는 수익 구조의 변화는 콘텐츠의 질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공급되는 고품질의 콘텐츠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정보에 대한 신뢰도'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에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 산업의 문제점과 그 문제점의 대안으로 디지털 유료화라는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예민하게 캐치한 것이 퍼블리가 발견한 큰 기회였다.
인간이 가진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자기 성장의 욕구를 해결해 주고자 한 퍼블리
콘텐츠가 유료화되고 있는 시장 기회를 포착한 퍼블리의 다음 고민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였을 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퍼블리는 고민 해결과 공감대 형성이라는 포인트로 기획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이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사람들을 큰 집단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 관심사'는 무엇이며, 해결되지 않는 혹은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고민'은 무엇인가로 질문을 해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소위 인간에게는 코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막연한 미래는 불안함을 야기시키고, 불안함 속에서 도태되고 싶어 하지 않는 욕구를 더욱 자극시킨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과 욕구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본능적인 것이다.
결국 미래를 향한 불안함과 자기 성장 욕구는 사람들 속에서 한순간에 유행하고 사라질 것이 아닌 지속가능성이 높은 주제이다. 퍼블리는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콘텐츠를 제작하면 사용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릴 것이라 내다본 것 같다.
구독자와 저자의 동시대성과 콘텐츠 완성도를 중시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기존 미디어 콘텐츠로부터 위와 같은 고민을 충족시키지 못했을까?
퍼블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중시했던 것 중 하나가 '동시대성'이라고 말한다.
이전까지의 기존 뉴스 콘텐츠들의 공급자와 소비자는 일방향적인 관계였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나 '선배'다. 이와 같은 이유로 퍼블리는 공급자인 저자를 실무진으로 설정하고, 저자와 독자의 눈높이를 맞춰나감으로써 공감대를 형성시키고자 했다.
(실제 퍼블리의 주 독자층은 평균 25-35세라고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소비자가 공급자가 될 수 있는 쉬운 전환 구조는 '전달력'과 그에 따른 '콘텐츠 완성도'의 이슈를 가져온다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년 차의 성공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커리어 이야기를 책으로 작성한다고 가정해 보자. 디자인에 대한 전문성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겠지만, 디자인이 아닌 책을 작성하는 '집필 실력'은 비전문가 수준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콘텐츠에게 '가독성'은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전달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좋은 콘텐츠로 평가받기 쉽지 않다.
퍼블리 또한 솔루션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같은 이슈를 고려했다고 본다. 실제 퍼블리는 소비자-서비스 또는 구독자-저자를 연결만 해주는 단순한 오픈 플랫폼이 아닌, 그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기획부터 디자인과 마케팅까지 퍼블리가 직접 진행하고 책임지고 있다. 만약 글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저자가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하면 된다. 그 녹음 내용은 퍼블리 직원들이 직접 편집하여 하나의 완성도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진다.
반복적인 데이터 기반의 실험을 통한 실행 방향성 구체화
초창기의 퍼블리는 콘텐츠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 '크라우딩 펀딩'을 통해 콘텐츠를 판매했다고 한다. 크라우딩 펀딩 대표 사이트인 텀블벅(tumblbug)에 콘텐츠 목차, 기획안을 업로드하고 콘텐츠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는 초기 비용을 줄이고 한정된 자원 속에서 빠르게 사업을 시도해보는 방안이었을 것이다.
당시 퍼블리는 해외시장의 컨퍼런스 등에서 진행된 연사 강의 등을 해석하며 작성한 콘텐츠들을 내놓았다고 한다. 어떤 콘텐츠들이 잘 팔리는지 고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실험을 반복한 결과 실제 업계 종사자들의 콘텐츠들이 인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전반적인 교양 주제를 모두 다루었던 것에서 '지식과 정보'라는 콘텐츠 주제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만큼 핵심 고객 타겟층도 좁히고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텀블벅은 판매되는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행동 및 반응 데이터를 그 이상 제공하지 않았다. 데이터 부족은 퍼블리가 나아갈 방향을 더 구체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져옴으로써 퍼블리는 소비자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퍼블리는 자체 사이트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자체 사이트를 개설한다고 데이터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이후부터는 퍼블리라는 프로덕트 브랜드를 시장에 알리기 위해 '마케팅'에 집중하게 된다.
퍼블리의 강점인 우수한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한 트레일러(Trailer) 전략
퍼블리는 고객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사람들을 자체 사이트로 유입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퍼블리의 강점인 콘텐츠의 우수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B2C 콘텐츠 유료화 모델을 생각했기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콘텐츠를 무료로 쉽게 배포하지는 않았다. 대신 콘텐츠의 일부만 공개하는 '트레일러(예고편)' 전략을 시도하게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SNS가 활성화되며, SNS를 통한 마케팅도 유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 같은 SNS 마케팅의 장점은 사람들의 행동 데이터를 취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퍼블리도 2~3편 정도의 콘텐츠만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이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콘텐츠의 일부를 공개하는데 SNS을 적극 활용했다. 더불어 '24시간 무료 멤버심 체험'이라 하여 하루만 무제한으로 퍼블리의 콘텐츠를 구독하도록 하여 콘텐츠의 강점을 알렸다.
지금의 퍼블리 마케팅 전략도 동일한 결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퍼블리 사이트에서는 '무료 멤버십 체험'이벤트를 실시한다. 또한 멤버십 가입을 하지 않은 채로 콘텐츠를 읽으면 앞부분은 원본 그대로 확인 가능하지만, 뒤의 내용은 블라인드 처리가 되어 있다. 비공개된 내용을 보기 위해서 '유료 멤버십'을 신청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데이터로 시작하여 데이터로 끝나는 퍼블리의 성장
마케팅은 투자 대비 좋은 결과가 실질적으로 도출되어야 '성공'이라 평가받지만, 프로덕트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가 없더라도 이를 실패라 단정 짓기는 어렵다.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어도 시도해본 마케팅을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한 퍼블리는 그들의 프로덕트의 시도들에 대한 평가도 데이터로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한 가지는 퍼블리가 콘텐츠 하나를 생산하는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큐레이터로서 저자의 콘텐츠를 직접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퍼블리의 과정은 담당 책임자의 주관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책임자 한 사람의 주관에 의해 콘텐츠가 제작된다면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콘텐츠 완성도가 천차만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퍼블리는 자신들이 모은 데이터를 통해 프로덕트를 개선시키고 더 나아가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인다.
실제 어떤 결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퍼블리는 텍스트형 콘텐츠가 아닌 영상 콘텐츠를 위한 '퍼블리 온에어-(C·SKILLUP)' 서비스를 만들었다. 또한 자신의 커리어 이력을 공개하고 서로의 생각들을 더 자유롭게 공유하는 장인 퍼블리만의 SNS, '커리어리'를 만들어냈다.
아마 이와 같은 모습으로 퍼블리는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확장되며 새롭게 만들어질 프로덕트는 보다 많은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축적시켜나가 프로덕트의 품질을 더욱 향상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퍼블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한 명의 사용자로서 프로덕트의 그 발전의 과정이 기대되는 바이다. 이에 프로덕트 매니저의 관점으로서도 성장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인사이트를 얻어가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와 관련한 글도 계속 기록해 나가고자 한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 17.02.09 / 이성규 기자 / 데이터·정체성, '퍼블리'를 낳다
- 매거진한경 / 19.04.29 / 장지민 기자 / "일과 성장 고민에 지갑 연다" 지식 콘텐츠 유료화 성공한 퍼블리
- 조선일보 / 21.03.16 / 성호철, 임경업 기자 / 퍼블리의 6년 피벗, 박소령 인터뷰
- Platum / 21. 03.02 / 2030을 위한 커리어 SNS '커리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