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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부기 Jul 19. 2024

오키나와의 추억

아이와의 첫 해외여행

여행 좋아하는 우리나라 MZ 엄빠들은, 현실의 억압된 욕망과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날려버리는 카타르시스를 익히 경험한 세대이다. 돈이 없으면 배낭여행으로, 여유가 생기면 (혹은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럭셔리 호캉스로 일상을 탈피하며, 낯선 장소에서의 짜릿함과 새로워지는 기분을 누구나 한 번씩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 각자의 해외여행 경험이 꽤나 있었고, 거리두기가 절정이었던 코로나 시국에 만나 데이트를 위해 차를 타고 국내 이곳 저곳을 여행한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나와 남편은 당일치기든 휴가를 내고 숙박을 하든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국내 여러 지역을 다녔다. 첫 만남에서 결혼까지 불과 8개월이 걸렸던 우리의 여행 스토리는 몇 편의 글로 구상해도 될 만큼 풍부하니, 다음 글감으로 아껴두도록 하겠다.



둘만의 신혼 기간도 잠시, 아이가 태어나면서 육아에 지치고 피로해진 일상에 매몰된 우리를 구원할 방법은 단연코 여행이었다. 아기가 100일이 될 때까지는 면역이 극도로 취약하에, 철저한 부모들은 외부인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감사하게도 신생아 시기부터 양가에서 육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기 때문에 평일은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고, 주말엔 당시 차로 20분 거리였던 시댁에 애를 데리고 가서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비록 육아휴직을 했지만 혼자서는 똑 부러지는 육아를 절대 할 수 없었던 초보엄마인 내가 이 시기에 양가 어른들이 안 계셨다면, 두문불출하며 혼자 애를 보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애초부터 우리는 신생아를 데리고 근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사소하지만 아기가 '승차감'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유모차나 카시트를 타고 단거리 이동부터 적응을 시작한 아기는 생후 4개월만에 왕복 10시간이 넘는 통영 장거리 여행을 격파했었더랬다.


통영 여행 이후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연애시절로 돌아간 듯 국내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챙겨야 할 것도 산더미고, 아이를 고려한 동선을 짜야 하고, 여행지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대응해야 했지만 아이와 함께할 수 있게 된 여행이 즐겁고 뿌듯했다. 남편은 그 당시 어떤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갖은 노력을 동반한 가족여행의 추억이 하나씩 쌓여갈수록 우리 가족이 더 성장한다 느꼈고, 심지어는 내가 육아의 고수가 되어가는 것 같아 우쭐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이도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여행을 즐겼고, 여행지에서 아프거나 속을 썪인 일이 없었다. (단 한 번, 부여 여행을 가서 늦은 체크인을 했는데 그 곳에서 도저히 잘 수 없을 정도로 울어 두 시간여 만에 체크아웃을 한 레전드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도 해외 여행의 장벽은 높았다. 아기와의 해외여행에는 두 가지의 리스크가 있다.

1. 비행시간을 아이가 버텨줄 것인가? (부모도 멘탈을 잡고 함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2. 아이가 해외에서 아프면? (현지에서는 병원시스템도, 언어도 니즈대로 활용이 어려울 것이다.)


1번은 이미 첫 돌 이후 제주도 여행을 두 번이나 다녀오면서, 한 시간 정도는 괜찮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2번은 당연히 답이 없었다. 가려면 리스크를 무릅쓰는 수밖에. 대신 아이의 컨디션과 위생 관리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확신이 없어 좀처럼 해외여행은 시도를 못하고 있었던 우리에게, 아이의 두 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24개월 미만의 아이에게 무료 좌석을 제공한다. 보호자가 안고 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들이 만 2세가 되기 전에 공짜 비행기는 한 번 타봐야하지 않겠냐는 그럴듯한 핑계가 생겼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할 첫 번째 해외여행 계획이 시작되었다.



우선 여행지를 정해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행시간이다. 나는 LCC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저가항공사들이 취항하는 비행시간 1-2시간 내외의 목적지들을 검색으로 추렸다. 일본의 몇 개 도시와, 홍콩/마카오, 타이베이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로는 여행지의 날씨가 중요했다. 당시 한국의 날씨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한국과 격차가 적으면서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었으면 했다.


모든 조건을 최적으로 만족시키는 지역으로 결국 '오키나와'가 선정되었다. 바로 티켓팅에 착수한 나는 가장 비싼 좌석을 이코노미 가격과 거의 비슷한 금액에 잡는 행운까지 얻었다. 호텔 예약은 티켓팅한 항공사와 제휴된 혜택으로 최근 건축된 남부 해안가의 리조트를 소폭 할인받아 결제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플렉스 차원에서 방은 스위트 제외 가장 좋은 룸으로 했는데, 4일을 지냈던 우리 가족의 만족도에 비하면 지불한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키나와로의 첫 해외여행은 대성공이었다.(아이는 23개월 즈음이었던 그 때의 경험에 대하여 27개월인 지금까지도 반복해서 떠올리고, 이야기한다.) 여행이라는 건 준비 과정에서부터 따끈한 설렘과 흥분을 유발하는 법. 출국을 위한 짐을 싸며 아이에게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오키나와'에 갈 것이며, 그 곳에서 '고래상어(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의 명물)'를 볼 것이라는 키워드를 주입하니, 아이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짐 싸는 일과 여행길에 나서는 일을 돕는다. 공항에 가니 정말 거대한 '비행기'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기내 방송으로는 '오키나와'라는 단어가 계속 들리고, 여행지에서는 '고래상어'를 보러가는 일정에 대해 엄마가 자세히 설명을 해주니, 모험을 떠나는 아이는 얼마나 흥분이 되었을까.


평소 차를 타면 잘 자던 아이였지만, 고래상어를 보러가는 길에는 하이텐션으로 끊임없이 재잘댔다. 실제로 마주한 고래상어의 압도적 비주얼이 무색할 정도로, 추라우미 수족관으로 가는 여정 자체가 서부 해안도로의 반짝이는 풍경과 차 안에 퍼지는 아이의 노랫소리, 여유롭게 나누는 남편과의 대화들로 더 없이 찬란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래상어 노래를 부르다, 그를 영접하고, 숙면하며 돌아오는 길 (왕복 10시간 운전한 여보에게 감사 ㅠㅠ ♡)


나의 여행 스타일은 계획형, 남편은 즉흥형이다. 첫 해외여행을 함께하는 우리는, 둘의 스타일을 적절히 믹스했다. 우선 나는 방문은 안하더라도 내가 머무르는 지역의 맛집리스트/카페/핫플레이스/쇼핑지 등에 대하여 파악은 해야하기 때문에(꼭 이렇게 해야 맘이 편하다..) 남편의 추천으로 여행 전 2024년판 '오키나와 가이드북'을 사서 하이라이트를 치며 독파했다. 대충을 알고나니 매일의 동선이 자연스럽게 그려졌고, 구글맵을 통해 점찍어둔 스폿을 중심으로 주변을 재검색하여 남편 스타일로 즉흥 계획을 짰다.


특히 우리는 식당의 경우 미리 찾아둔 곳 중 단 한 군데도 가지 않았는데, 너무나 잘 한 일이었다. 가이드북 추천으로 첫 방문했던 식당의 줄을 보고 '관광객 전용 식당이구나'를 직감한 이후 차를 돌려 동네의 허름한 이자카야를 찾아 들어갔는데, 입장과 동시에 탄성이 나왔다. 아늑한 분위기에 좌식 테이블 네 개가 있고, 그 중 두 자리에 우리 또래의 엄빠와 아들 또래의 아이가 식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마지막 남은 한 자리는, 주저없이 우리가 차지했다.


현지인밖에 없었던 그 곳은, 우리와 같은 구성의 가족들로 채워져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시미와 함께 시원한 나마비루(생맥주), 로컬메뉴인 타코라이스(과거 미군 점령 시기의 잔재라고 한다)와 오키나와 소바를 시키고, 남편을 위한 육류(돼지고기 구이), 아들을 위한 토마토 슬라이스까지 추가로 주문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을 시켰지만 우리 가족은 분위기를 즐기며 천천히 모든 음식을 먹었다. 아들은 식사가 끝난 후에도 일어나지 않겠다며, 자리에 앉아 몇 분을 버텼다. 그 곳의 느낌이 좋았나 보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으로 가게를 나갈 땐, 친절하게 계산을 끝내주신 주인분께서 아이에게 과자며 사탕을 잔뜩 쥐어주셨다. 다시 흥분한 아이를 데리고, 편의점 투어를 하며 맥주와 간식을 구매한 후 호텔로 가서 잠을 청했다.


오키나와에서 처음 방문한 식당(이자카야), 여행기간 묵었던 호텔의 발코니, 그리고 호텔에서 보았던 예술적인 석양 뷰.



아이(아기-어린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 식사, 이동수단이다. 편안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적당한 자극(집이랑 달리 꾸며진 느낌/여행을 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인테리어의 숙소면 좋다. 꼭 인테리어가 화려한 곳이 아니더라도, 아늑하거나 포근한 느낌이 드는 곳 또한 좋다. 발코니나 테라스 등이 있으면 아이들은 흥분을 하고, 그 곳에 들락날락 하는 것만으로도 혼자 잘 논다.


숙소와 맞물려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조식이다. 조식당은 클수록 좋다. 당연히 넓을수록 좋기도 하지만, 식당이 넓으면, 음식의 종류도 많아진다. 부모 속을 태우는 아이들의 편식이나 식사 거부(흥분하거나 재미있는 상황일수록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를 다양한 음식이 있다면 이것 저것 시도해보며 극복할 수 있다. 아침에 뭐라도 먹여야, 알차게 보내야 할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힘있게 시작할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제 때 먹이는 식사 외에도, 여행지에서는 이동이 많기 때문에, 중간 중간 편의점이나 마트를 통해 간식을 구매하여 들고 다니는 것도 좋다. 나는 혹시 모를 마음에 한국에서 먹이던 간식들을 싸 갔지만, 아이 눈에도 현지에서 직접 골라 사먹는 간식이 흥미롭고 맛있어 보였을거고(애나 어른이나 생각은 똑같다..차별하지 말자.) 사달라는 간식을 거의 사주었다. 결국 짐만 늘린 꼴이 되었다..


대신 간식을 사줄 땐 포장 뒷면의 성분표를 파파고(번역 어플)로 찍어 아이가 먹으면 안좋은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체크했고, 대체로 간이 센 일본 음식을 식당에서 주문하면 아이에게 먹일 양을 덜어 소스를 덜 섞거나, (국물음식이라면) 뜨거운 물을 요청하여 희석시키는 방법을 썼다.


아이가 대중교통을 이용할(좋아할) 정도로 크지 않았다면, 무조건 자차(렌트)가 편하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타인의 눈치 안보고, 편하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저귀 갈기, 간식 먹이기, 울면 달래기, 우당탕탕 몸부림 받아주기 등을 거실이 1/10 크기로 작아졌다고 생각하고, 내 집처럼 편히 행하면 된다. 물론 아이에게 주행 중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못하도록, 또는 얌전히 드라이브를 즐겨보도록 교육하는 것도 차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차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들은 우리 가족끼리만 써내려가는 여행지에서의 기록이 된다.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렘을 함께 품은 채 편안한 마음으로 나눈 대화는 그 자체로 리프레싱이 되기에 충분하다.


해 질 무렵의 차탄 선셋 비치와 근처의 아메리칸 빌리지는 오키나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꼭 가보길 추천한다.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다.



오키나와에 다녀온 이후로 시댁에서 마련해주신 일본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왔고, 아이는 종종 오키나와와 오카야마(두 번째 갔던 일본 공항)에 연관된 기억을 되뇌며, 두 여행을 정확하게 구분한다. 두 살배기 아이도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다. 아이 데리고 해외여행을 간다 했을 때 "고생을 사서 하네~"라는 걱정 아닌 걱정도 들어봤지만, 결과적으로 사서 한 고생이 아니라 기꺼운 고생이었던듯 하다. 아니, 사실 고생스러움은 즐거움에 희석되어 거의 느끼지 못했다.



오키나와의 추억을 안고, 우리 가족은 다음 달 후쿠오카로 두 번째 셋 만의 해외여행을 떠난다. 다음 여행은 8월의 무더위 속에서 렌트 없이, 뚜벅이로만 진행될 것이기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기에 앞서 다음 여행의 예약을 단행했을만큼, 첫 여행에서 얻은 매력적인 경험과 자신감이 컸다.

다음 여행의 후기를 쓰기 위해,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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