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자옥 Oct 11. 2019

나도 뒤끝 없이 한번 살아보자

나는 뒤끝 작렬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이런 와중에 자존심마저 세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너 참 못생겼다'라고 한다면 나는 '그러게'라고 간단히 답하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그나마 이건 많이 나아진 편이다. 예전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찾아낸 제일 적당한 대답이 '그러게'였다. 궁리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욕을 한 사발쯤은 한다.  '지는 얼마나 예쁘길래',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이런 XX 같으니라고' 그리고는 그날 이후로 복수의 칼날을 간다. 내가 반드시 너보다 더 예뻐지리라 하면서. 진짜 더 예뻐진 날이 오면 혼자 흐뭇해한다. 속으로 또 생각한다. '봤지?'라고.

이게 나의 뒤끝이다. 참 스스로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다. 그냥 앞에서 "야, 너는? 가서 거울 좀 보고 얘기해"라고 하면 끝날 일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할 때였다. 가까운 친척 중 한 명이 취업 준비는 잘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알아보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물었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일본어는 하지 않냐?”

이건 뭔가 싶었다. 일본어 전공자인 나에게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뭘까. 짜증이 확 올라왔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에도 '그러게'라고 답했어야 하나….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집에 돌아와서 혼자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렸다. '지는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별 것도 아닌 게 사람을 무시해'

   

그러고 나서 십몇 년이 지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번역회사에 들어갔고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 경력도 꽤 쌓였다. 내가 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예전의 그 친척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 번역을 하냐, 어렵지는 안냐, 일은 많냐는 등의 것들을 물어봤다. 나로서는 흔한 질문들이었기에 적당히 대답했다. 그러던 중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일본어 할 줄 알잖아?" 그는 언제 적 이야기냐며 다 잊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래? 옛날에 나한테 일본어는 개나 소나 다 한다고 했었는데 이젠 아닌가 보네?”

그는 당황한 듯 내게 물었다. “내가 그랬니?” 나는 무심한 듯 답했다. “응. 그랬어.” 그는 멋쩍은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이걸로 나의 복수가 끝났다. 그야말로 뒤끝 작렬이지 않은가.



엄마와 나는 둘 다 자존심이 센 거 하나를 제외하고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엄마는 뒤끝이 없다. 뒤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속에 남기는 말이 없다. 티끌 하나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린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네가 어떻게 엄마한테 그럴 수가 있냐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우선 잠자코 들어야 했다. 한참 듣다 보면 좀 어이가 없었다. 이유가 너무 사소했다. 대게는 안부 전화를 자주 안 했다거나, 동생한테 신경을 안 썼다거나, 내가 지나치듯 했던 말이 생각할수록 섭섭하다거나 뭐 이런 것들이었다. 사소한 이유에 비하면 쏟아붓는 말은 어마어마했다. 내 딸이 맡냐부터 시작해서 그러다 벌 받는다, 엄마 무시하고 얼마나 잘 사는지 보자까지.


나에게만 유독 이랬던 것은 아니다. 상대가 누구여도 똑같았다. 엄마의 자존심을 건드렸거나 어떤 분한 일이 있으면 늘 그랬다. 생각을 속에 담아두는 법이 없었다. 가끔은 없는 생각마저 억지로 끌어내는 듯하기도 했다.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할 때는 막 해도 뒤끝은 없어."

난 이 말을 아주 싫어했다. 물론 지금도 싫다. 차라리 뒤끝이 있더라도 막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엄마의 막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엄마니까, 지금은 화가 났으니까, 그래 섭섭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은 해보지만 가슴은 답답했다.


가끔은 이런 엄마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속은 진짜 편하겠다 하면서.


나도 한번 뒤끝 없이 살아보고 싶다. 십몇 년 걸려 나만 아는 소심한 복수를 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남김없이 다 털어버리고 싶다. 엄마처럼은 아니어도 개나 소나 다 하는 거라고 하면 어디 한번 해보라고 하고, 얼마나 잘 사는지 보자고 하면 열심히 살 테니 잘 보라고 하면 되지않을까.

나도 이제 속 좀 편해보자. 남기고 자시고 할게 뭐 있나.    



           

 



 


작가의 이전글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