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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0. 2019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참았을 뿐이다

아빠는 늘 내게 말한다. "네가 딸이니까 참어.",  "네가 누나니까 이해를 해."

엄마는 늘 내게 말한다. "네가 손아랫사람이니까 먼저 윗사람들 챙기고 불편한 소리 해도 그냥 참어."

나는 윗사람일 때도 아랫사람일 때도 참아야 한다. 그럼 나는 누가 참아주지? 누가 챙겨주고 누가 이해해주지?

 


지인 J가 있다. 그녀와 나는 오묘한 관계이다. 가장 친할 법한 사이이지만 가장 먼 사이이다(적어도 나는). 그녀는 나에게 항상 뭔가 원하는 게 있다. 그리고 불만도 같이 있다. 잘 지내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어느 날 불쑥 그동안의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물론 막말도 함께다. 어떤 예고 같은 것도 없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냥 들어야 한다. 늘 '섭섭하다. 뭐 하나 챙겨준 거 있냐?'로 시작해서 '다 너 때문이다.'로 끝이 난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하소연을 한다. 내가 얼마나 자기한테 못되게 굴었는지. 자기는 얼마나 나한테 잘했는지. 그러면 사람들은 잘도 속는다. 나에게 잘 좀 해주란다.


그 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혼자 풀어진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해서는 같이 밥을 먹자고 한다. 나의 마음 상태 같은 건 그녀에겐 중요치 않다. 밥을 먹으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겠지 싶지만 얼마 전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사과 비슷한 것도 없다. 그저 평소처럼 사는 얘기를 하다 간다. 왜 보자고 한 건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럴 때는 굳이 나도 그 일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쿨하게 마음 풀었어'라는 그녀만의 신호가 아닌가 싶기도 다. 내 마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잘(적어도 그녀는) 지낸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다가 또 그때가 찾아온다. 또 시작이구나 싶다. 나에게 그녀는 항상 불안하고 불편한 존재이다. 그녀와 있을 때는 항상 민감해져야 한다. 어느 포인트에서 마음이 상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참 신기하다. 그렇게 내가 싫고 미우면 안 보면 그만일 텐데 꾸역 꾸역 연락을 하고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나는 되도록 멀리하려 하지만 계속 가까이 오는 그녀를 막을 수는 없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지인 하나는 나에게 말했다. "걔가 마음이 약해서 그래. 네가 좀 감싸줘. 네가 더 마음이 넓잖아." 그리고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한마디를 더했다.


"넌 강한 애잖아."


내가 강하다고? 나도 남들과 똑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찌르면 금방 피나고 아픈 그런 심장 말이다.

나는 강한 게 아니고 잘 참았을 뿐이다. 말도 안 되는 막말도 화가 나서 그러려니, 본심은 아니려니 하면서 참았고, 내가 훨씬 더 섭섭한 게 많지만 똑같이 섭섭하다 할 수 없기에 그냥 들었을 뿐이다.


내 마음은 바다와 같지 않다.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전체가 일렁이는 작디작은 물웅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일렁임이 보이지 않나 보다. 나에게 자꾸 마음이 넓단다. 그리고 더 넓어지란다.  


사람들은 울고불고 징징대면 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을 더 배려해준다. 내가 보기엔 그게 더 강한 듯하다. 적어도 맘껏 표현하고 풀 수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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