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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4. 2019

배려도 해 본 사람이 배려를 알아 본다

늘 배려를 받지만 자신이 배려를 받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은 배려할 줄도 모른다. 


친구 J가 있다. 그녀와 약속을 잡으면 대부분 내가 그녀의 집 쪽으로 갔다.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가는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되니까 그다지 나쁠 것도 없었다. 점점 그녀도 약속을 잡을 때마다 의례히 자기 집 주변에서 보자고 했다. 눈치를 못 채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몇 번인가 내가 그녀 쪽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우리 집 쪽에서 보자고 하면 그녀는 여지없이 그럼 다음에 보자고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녀는 나의 배려를 당연한 걸로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나를 배려를 할 의사가 없음을 깨달았다. 


한 번은 나의 생일이었다. 친구 몇 명이 모였고 메뉴는 중국음식으로 정했다. 다들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유독 그녀만이 기분이 별로인 듯했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다른 친구가 눈치를 채고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난 엊그저께도 중국음식 먹었거든. 사실 다른 거 먹자고 하려다 이제 와서 바꾸자고 하기도 그렇고. 따라오긴 했는데 잘 안 먹히네."


좀 어이가 없었다. 이게 뚱해있을 이유인가 싶었다. 

난 항상 그녀가 원하는 걸 먹었다. 내가 특별히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뭘 먹는 게 중요할까 싶어서였다. 음식보다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느냐가 내겐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번은 상황이 좀 달랐다. 여러 명이 만나는 자리였고 무엇보다 내 생일이었다. 친구들은 내 의견을 먼저 물어봐줬고 다들 흔쾌히 좋다고 해서 정했던 거였다. 그런 자리에서 굳이 그렇게 싫은 내색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위해서 그 정도의 배려도 하기가 어려운 건가.


이후로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여러 사소한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자기 기분이 우선이었고, 자기 생각이 옳았고, 자기 얘기를 더 많이 했다. 

나는 배려 차원에서 되도록 그녀의 기분에 맞춰줬고, 그녀의 생각과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줬다. 이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나 보다. 그녀는 배려받고 있다는 걸 몰랐던 듯하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했던가. 배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배려해 본 사람만이 배려를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고마움도 안다. 나는 이제 배려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배려를 하지 않기로 했다. 고기 맛도 모르는 사람에게 비싸고 좋은 고기는 낭비에 불과하지 않나. 무엇이 됐든 알아보는 사람이 가졌을 때 가치가 있는 듯하다. 고기든, 보석이든, 배려든.


내 배려, 하마터면 계속 의미없을 뻔했다. 이젠 그 배려 나에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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