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요즘 불편하게 들리는 존댓말”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예시로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어요.’ ‘혈압은 정상이세요.’ 등을 들었다. 여러 명이 조용히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어떤 댓글이 달리기 전까지는.
어떤 이가 자기는 서비스직에 있다며 말투로도 트집 잡는 사람들이 많아 아예 뭐든 높여 말하고 있는데 이 말도 불편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서비스직에 있는 사람 무시하는 거냐’는 댓글이 올라왔고, 다음엔 ‘여러 사람이 쓰면 그게 맞는 말이 되는 것도 모르냐, 뭘 좀 알고 말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더니 ‘별게 다 불편하다’는 비난의 반응이 쏟아졌다.
내가 유명인이 아니어서 망정이지 알려진 사람이었다면 누구누구 ‘서비스직 무시 발언’이나 ‘무개념’이라며 여러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고, 나중엔 ‘과거 발언’까지 끄집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장이 심한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팔로워 수가 제법 있는 어느 SNS 유저는 한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언뜻 비췄다가 며칠간 곤욕을 치렀다. 해당 연예인이 성인 입장에서 미성년자를 만났다는 이슈가 터진 줄 몰랐던 거다. 댓글이 또 난리가 났다. ‘실망이다.’ ‘똑같은 인간이다.’ ‘전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이런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한다. 다수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 같고, 비난이 시작되면 거기에 올라타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온라인은 그 흐름이 특히 빠르고 거세다. 누군가를 나락으로 보내야만 끝나는 듯하다.
비난 댓글을 보면 의문이 든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 클릭해 보면 비공개 계정, 혹은 글 하나 없는 텅 빈 계정이 대부분이다.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니, 두려움도 책임도 없다. 그러니 쉽게 말하고, 쉽게 판단하고, 쉽게 처벌한다.
흥미로운 점은 온라인에서의 도덕적 엄격함과 현실에서의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다. 가상공간에서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며 타인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자신이 비난했던 그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환경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실제로는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사회 규칙을 깐깐하게 논하면서 실생활에서는 교통 신호도 쉽게 무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온라인 속 가상 자아와 현실 자아 사이의 불일치는 자기기만을 낳고, 그 모순은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덮인다. 내 결핍을 남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상에는 전문가가 넘친다. 글의 맥락과 상관없이 어느 한 부분만 떼어 물고 늘어지고, 글쓴이의 자격을 논한다. 마치 자신에겐 그럴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듯.
간혹 이런 반응에 지친 누군가가 ‘지겹다. 그만들 좀 하자’라며 불편함을 드러내면 그들은 말한다. 내가 내 생각을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누구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럴 때면 궁금해진다. 정말 자기 생각일까.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감정을 털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 안의 불안, 불만, 분노 등을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털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많은 악플은 비난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맥락 없는 조롱, 인신공격, 막연한 반감. 당사자가 법적 처벌을 받아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않는다. 바닥까지 끌어내려야 마음이 놓인다. 추락한 상대를 보며 자신이 높아졌다는 착각이 주는 쾌락이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을 보면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 같다. 늘 누굴 감시하며, 문제 될 만한 순간을 기다리는 듯. 미셸 푸코는 현대 사회가 서로를 감시하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다고 했다. 지금의 온라인이 그렇다. 누군가를 정의로 처벌하며 스스로 정의가 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타인의 비난에는 민감해하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스스로도 감시과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 프로그램에서 한동일 교수는 “누군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성숙함이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온라인이 발달하며 쉽게 누군가의 문제를 지적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려는 경향이 많아졌다. 하지만 지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에서 다뤄야 할지, 또 나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가리키는 손가락을 내게도 향하게 해서 나는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이라 믿고 온라인에 쏟아내는 말들이, 정말 깊이 생각한 결과인지 아니면 그저 대세에 휩쓸린 감정의 표출인지 한 번쯤 성찰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