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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고시, 초등 의대반

by 김자옥

아이는 어느 때부턴가 요리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진로를 요리 쪽으로 생각했다. 나와 남편은 응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한 게 기특하기만 했다.

고 3이 되고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면서는 슬슬 초조해졌다. 이 성적으로 원하는 학교의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에겐 내색하지 않았다. 본인 마음이 제일 불안할 테니. 마음을 다잡았다. '길은 여러 가지야. 대학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지.'


3학년 2학기. 학교에서 상담이 있었다. 난 계속 학과 얘기를 하는데 선생님은 학교 얘기만 했다.

"선생님 아이가 희망하는 학과는 요리 쪽이에요."

"어머님 지금은 학교만 보세요. 일단 학교에 들어가서 전과를 해도 되고 아니면 편입을 해도 되는 거니까요."

난 어리둥절해졌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1학년 때부터 희망 학과를 적어내라 하고, 모든 보고서마다 학과와 관련해서 작성하라고 부담을 줬나. 생활기록부는 왜 또 학과와 연계해서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입시 관련 카페에 드나들며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선생님과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했나.’

아이도 같은 말들을 들어서인지, 나보다 확고해 보이던 아이도 나중에는 흔들리고 말았다.

"나도 이제 모르겠어. 그냥 점수 맞춰서 갈래. 내가 진짜 요리 쪽으로 관심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긴 그랬다. 열아홉에 남은 인생의 진로를 정하라는 건 애초에 무리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봐 온 게 얼마나 된다고. 보고 들은 것보다 모르는 세계가 훨씬 많을 텐데. 아이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유튜브의 영향이었다. 요리가 재밌을 것 같았고, 방학 때 잠깐 학원에 다녀 보니 소질도 있는 것 같았던 거다. 하지만 단지 그걸로 진로를 정하긴 불안했다. 하도 주변에서 미리 과를 정하는 게 좋다고 성화를 해서 정했을 뿐.

결국 아이는 다른 과를 선택했다. 다행히 아이와 잘 맞고 만족하고 다니고 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사실 이런 경험은 나에게도 있었다. 고3 때 대학 원서 작성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에게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거기 나와서 뭐 할 건데?"라며 단박에 잘랐다. 난 꽤 머쓱했다. 취업 생각을 못 한 나 자신이 어쩐지 철이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다른 길을 택했고, 심리학은 여전히 내 관심사로 남아 있다. ‘그때 내 생각을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아이도 살면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이 입시를 치르며 '나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론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름의 가치대로 아이를 키우는 척했지만 돌아보면 입시뿐만 아니라 매시기마다 주변 말에 영향을 받았고 남들과 같은 선택을 했다.

초등 5학년까지 집에서 책만 읽히던 내게 주변에선 성화였다. 아직도 영어 학원을 안 보내면 어쩌냐고. 문법은 이제 시작해도 늦다고. 책을 많이 읽으면 문법은 저절로 익히게 되지 않나 싶던 난 불안해졌고 6학년이 되면서 학원 보내고 문법을 듣게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입시는 국어가 중요하다. 고등 국어는 혼자 할 수 없다’는 말에 난 또 혹했다. 서둘러 학원을 알아보고 혼자 해보겠다는 아이를 설득해 학원에 보냈다.


아이를 키우며 난 무엇보다 자기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만의 시선과 생각이 없으면 세상 여러 말에 쉽게 흔들리고 남이 보고 말하는 대로 생각할 테니까. 그래서 입버릇처럼 말했다.

"네 생각이 중요하지.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랬던 사람이 정작 중요한 순간엔 아이의 의사보다 주변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나 아이 생각이 아닌 사람들의 말을 따랐다.


아이 친구 중에는 의대를 목표로 재수나 반수를 한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인 중에도 아이를 의대에 보내겠다는 사람이 몇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의대는 뜻있는 사람만 지원하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그보단 성적이 되면 일단 지원하는 분위기가 됐다. 여러 매체에선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 출신들의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평생 면허가 나오는 의대, 치대, 한의대, 약대 등으로 몰리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이런 분위기는 빠르게 퍼졌고 지금은 하나의 흐름처럼 되어 버렸다. 성적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의대를 생각하는 식으로. 게다가 이젠 성공의 척도가 의대 입학까지 되어 버리기도 했다. 초등 의대반이 개설될 정도로.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통해, 우리의 취향, 행동, 신념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1950년대 부르디외는 알제리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당시 알제리는 자본주의 문화가 이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물물교환 시절의 습관과 전통에 따라 경제활동을 했다. 세상이 변했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은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던 거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입시와 사교육 문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다 어렵던 그 옛날엔 공부만 하면 어쨌든 성공했다. 나랏일이라도 하면 가문이 일어섰다. 그러니 자녀 교육에 모든 걸 걸 수밖에. 그 흐름이 법대에서 공대로 다시 의대로 흐르고 있다. 여기에 각 개인의 자유의지는 얼마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각이라고 믿고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한 연예인이 자녀의 사교육비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어린 두 자녀의 한 달 사교육비로 325만 원을 지출한다는 고백에 일부는 위화감 조성이라며 불편함을 드러냈지만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능력 되면 나라도 한다”며 공감했다. 어떤 이는 “안 하고 싶어도 주위에서 다 이러니 할 수밖에 없다. 다들 이 정도는 쓰는 것 같다”고도했다. 어느 순간 사교육비에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당연하고 당당해졌다. 그런 면에서 시대가 흐를수록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는 않겠다는 불안감이 밀려든다. 이것도 하나의 아비투스일 것이다. 우린 이 아비투스를 깰 수 있을까.

최근엔 7세 고시가 논란이 됐다. 특정 동네의 특정 영어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이라는데 이게 도저히 7세가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영유 카페엔 "다들 7세 고시 준비하시나요?" "7세 고시 문의요" 같은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정말로 7세 고시에 동의해서 아이를 준비반에 넣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얼마 전에 한 교수가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이는 분명한 학대이며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고 했다. 다수가 동조하는 분위기다. 변화가 생길까. 그래도 여전히 유지될까.

내 인생에 엄마가 이런저런 참견을 할 때마다 난 반항하며 대꾸했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정말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왔는지 자신이 없어진다. 더불어 아이에게 앞으로도 “네 생각이 중요하지”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지. 어딘가 계속 뜨끔할 것 같다.

여기저기서 ‘나다움’을 외치지만 우린 과연 ‘나답게’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나답게 보다 오히려 남들처럼 살려고 하진 않나. 아이들에게도 '나답게'가 아닌 남들만큼 살기를 바라고 있진 않나. 그래서 자꾸 일찍부터 길을 만들어주려 하고, 실패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하고, 다수가 원하는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나답게’는 뭘까. 온전히 나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말하는 것일까. 그게 과연 가능할까? 온전한 자유의지라는 것이 요즘 같은 시대에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시대의 최선의 나다움은 끊임없는 ‘자각’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자신이 현재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는 알고 그를 바탕으로 선택을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7세 고시든, 초등 의대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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