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축소하는 그
A의 전남편은 말다툼 중 A를 거칠게 밀쳐 넘어뜨렸다. A가 일어서려 하자 흥분한 그는 A를 더 한 번 더 세게 밀치곤 A의 목을 졸랐다. A가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그제야 그는 손을 뗐다. A는 큰 충격을 받고 이혼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남편은 계속해서 자기가 한 일을 축소했다. “내가 무슨 목을 졸랐다고 그래. 살짝 민 거지.” “왜 그렇게 무섭게 말을 해. 목을 졸랐다니. 잠깐 손을 댄 걸 가지고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행동과 그 의도를 축소하거나 아예 부인하는 특징이 있다. 모욕적인 발언을 해놓곤 농담이었다고 하거나,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상대에게 큰 피해를 주곤 단지 실수나 착오였다고 가볍게 넘어가려 한다. 상대가 문제 삼으면 “뭐 이런 것 갖고 그래”라며 되레 분노하며 자신을 탓하는 상대를 속이 좁거나 쩨쩨한 사람으로 만들면서 절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때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좀 더 소극적이고 간접적인 태도를 취한다. 때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며 회피하기도 하고, 어느 땐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해석하기도 한다.
A의 전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단지’ ‘살짝’이란 말로 축소하며 계속해서 당시 상황을 왜곡하며 재해석했다. 자신이 밀어 넘어진 걸 A가 분노하다 혼자 넘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A가 먼저 자신을 공격해서 방어하려다 얼결에 손이 간 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더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회사의 한 상사는 평소 탐탁지 않게 여기던 어느 직원을 따로 불러 말했다. “너 여기서 나가면 받아줄 데가 있을 거 같아? 내가 한마디면 하면 넌 이 업계에선 어디도 못 가.” 이 일이 알려져 경고 조치를 받았고 상사는 해당 직원에게 사과해야 했다. 하지만 상사는 미안하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난 그저 격려 차원의 말을 좀 강하게 했을 뿐인데 불편하게 느꼈다니 유감이네.” 그러곤 뒤에서 그의 동료들에겐 “요즘 애들한테는 무슨 말을 못 한다”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했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행동을 사소하게 만들기 위해 상황을 왜곡한다. 중요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그게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하고, 실수를 해놓고도 “누구나 그럴 수 있잖아”라거나 “난 도와주려 한 건데 네가 그럼 내가 무안해지잖아”라며 상대방의 반응을 과한 것처럼 만든다. 때론 책임을 전가하며 “미리 말했으면 먼저 했지”처럼 되레 상대의 탓으로 돌린다.
축소와 왜곡 뒤에 숨은 심리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미지에 금이 가는 걸 견디지 못해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완벽함이 깨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면 될 텐데, 그것도 싫다.
이들은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행동 규범을 따르는 걸 꺼린다. 그런 기준을 따르면 자신이 통제당하는 것처럼 느끼고, 반대로 그것들을 거부할 때 힘이 있고 우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 행동은 전혀 바꾸지 않으면서도, 부정적인 말은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럴 때 이들이 택하는 방식은 하나다. 자신의 의도와 행동을 축소하고, 왜곡하며, 문제를 상대방 탓으로 돌리는 것.
“그럴 뜻은 없었어.” “단지(살짝) … 했을 뿐이야.” “어쩌다 한 번 그런 거잖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이 말들로도 빠져나가지 못하면, 이런 식으로 반격한다.
“그래, 그건 그렇다 쳐. 근데 네가 잘했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어.”
마치 자기 행동엔 늘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의 심리를 조작하고 통제하기 위해 축소를 이용한다. 상대방이 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조작하고, 자기 행동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만들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오해했나’ ‘별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심했나’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공감 잘하고 자기 성찰이 몸에 밴 사람은 자신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상처를 준 것처럼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그러곤 자기가 더 이해하려 노력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행동만 축소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감정마저 가볍게 여긴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잖아”, “기분이 좀 나빴던 거지, 무슨 상처까지 받았다고 그래” 같은 말로 정당한 감정 표현을 비합리적인 과민반응으로 치부한다. 가스라이팅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이럴 때 주의해야 한다. 감정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내가 느끼는 것이 내 감정이다. 누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교묘해지는 전략
나르시시스트의 최소화 전략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점점 더 교묘하고 심각해진다. 초기에는 비교적 가벼운 형태로 나타난다. 약속 시간에 항상 늦어 시간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면 “어쩌다 한 번씩 늦는 건데, 시간에 되게 민감한가 보네”라며 상대방의 기대나 감정을 가볍게 무시한다. 관계가 더 진전되면 중요한 약속을 완전히 어기고는 “난 그런 약속한 기억이 없는데? 네가 착각한 거 아냐?”라며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 그럼 상대방은 자신의 기억과 인식을 의심하게 된다. 관계가 더 깊어지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의지하는 상태가 되면 최소화는 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도 “뭘 그런 걸 갖고 난리야. 누가 들으면 내가 큰 해라도 가한 줄 알겠네”라며 뻔뻔해진다. A의 전남편 역시 이 단계를 다 거쳤다.
말보다 행동을 보라
나르시시스트의 축소는 그 심리를 모르면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다. A는 전남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르시시스트의 속성을 알고 그제야 답답함이 풀렸다고 했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특히 해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의 말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말로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라고 한다. 하지만 행동이 나쁘고 바뀌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한 위험 신호다. A처럼 오래도록 그 마음을 읽으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상대에게 끌리고 혹은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착각했을 거야’ ‘요즘 많이 바쁘긴 했어’라며 대신 변명을 대주기도 한다. 그러면 나르시시스트는 더 본격적으로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의도까지 조작한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행동을 했는가’이다.
변명도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바꿀 의지는 없고 대신 불편한 그 자리만 피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러니 거짓 변명은 아무 때고 쉽게 만들어낸다. 꼭 기억해 두자. 말이 아닌 행동을 봐야 한다.
A는 이혼을 준비하며 심리 상담을 받았다. 상담 선생님에게 자기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깨달았다고 했다. 전남편은 해로운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처럼 상담을 받는 것도 좋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경험을 공유해 보는 것도 좋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해로운 관계는 더 명확히 보일 수 있다. 그럴 사람이 없으면 있었던 일을 써보는 것도 좋다. 쓰다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혹은 나중에라도 읽어보면 보인다.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불편하고, 이상하고, 상처받았던 그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경계도 세울 수 있고, 거리를 둘 수도 있다. 말보다 행동을 보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나를 보호하자’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 건강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