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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by 김자옥

얼마 전 커피숍에 있는데 옆 테이블에 우르르 단체가 들어왔다. 들리는 몇 마디 말에 초등 엄마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새학기 반모임인 듯했다. 이들은 들어오자마자 공간을 체크하고 테이블을 붙이곤 의자를 끌었다. 순간 생각했다. '아, 망했다.' 옮길만한 다른 적당한 자리도 없고 그냥 있자니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눈에 그려졌다.

예상은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컸고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간간이 손뼉까지 쳤다.


늦게 와서 가장 가장자리, 내 테이블과는 더 가까운 쪽 자리에 앉은 한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회사에서 곧장 왔는지 들어올 때부터 허겁지겁했다. 자리에 앉아선 분위기 살피기에 바빴고 대화에는 잘 끼지 못했다. 줄곧 듣다가 "아, 그래요?"라는 게 전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대화에서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핸드폰을 몇 번씩 확인하는 게 어쩐지 '계속 있어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어색한 미소에서 몇 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가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내 가슴도 함께 조여왔다. 직장맘인 난 늘 엄마들 모임에 끼지 못해 불안했다. 놓치는 정보가 있지는 않은지. 나처럼 우리 아이만 모임에 못 끼는 건 아닌지.


하루는 일부러 반차를 내고 엄마들 모임에 참석했다. 앉아 있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우 이런 얘길 들으려고 반차까지 냈나.' 밖에서 볼 땐 엄청 중요한 얘기가 오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안 들어도 좋을 얘기가 태반이었다. 그래도 이런 데서 친분이 쌓이고 그 안에서 정보가 흐르는 거겠지? 란 생각이 들었지만 난 아무래도 못 할 것 같았다. 앉아 있는 내내 딴생각이 났다. '이 시간이면 보고서 몇 개는 끝냈겠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 방학이면 혼자 지내야 했다. 아이는 외롭고 힘드니 자주 내게 카톡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다. 주로 오늘 뭐 하면 되냐, 어디가 아프다, 학원 안 가면 안 되냐 등의 얘기였고 난 일하다가 이런 연락을 받으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쁜 날엔 신경이 날카로워져 대충 답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하루는 아이가 “엄마 너무 외로워요”란 카톡을 보냈다. 난 바로 핸드폰을 들고 나가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뭐 하고 있었어? 밥은 맛있게 먹었어?” 같은 일상의 대화를 한참 나누었다. 아이는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이제 관찮아. 기분 좋아졌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마음이 복잡해졌다. 밖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놀아도 좋을 텐데. 놀 친구가 없나. 나 때문인가. 내가 진작 엄마들하고 친해 뒀으면 아이도 가까운 친구가 많았을 텐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뭘 위해 이러고 있나 싶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권주영은 우울증으로 인한 가성치매로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그녀는 우연히 아이 문제로 일하는 틈틈이 여기저기 전화하며 불안해하는 간호사 박수연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루는 그런 박수연 간호사에게서 권주영은 젊은 시절 자신의 환영을 본다. 중년이 된 지금의 권주영은 젊은 날의 자신을 안쓰러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 모든 걸 다 해주고도 못해 준 것만 생각나서 미안해질 거고, 다 네 탓 할 거고, 죄책감 들 거야. 네가 다 시들어가는 걸 모르는 거야. 인생이 전부 노란색일 거야. 노란불이 그렇게 깜빡이는데도 너 모를 거야. 아이 행복 때문에 네 행복에는 눈감고 살 거야. 근데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매 순간 애쓰는데 늘 미안했다. 언제나 부족한 존재 같았다. 난 그저 내 일을 하며 가족과 행복하길 바랄 뿐인데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았다. 어느 쪽에 있든'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커피숍 엄마들 모임에서 구석에 자리한 엄마는 그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 때문에 우리 애가 친구도 못 만들면 안 되지. 바쁘더라도 시간을 더 쪼개봐야지. 내가 힘든 게 대순가.'라고 했을까. 아니면 '별거 없네. 내가 이런 데 안 나와도 애는 잘 클 거야. 한번 얼굴 비쳤으면 됐다'라고 했을까. 후자이길 바라본다. 자신을 잃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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