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야, 팀장하고 혹시 내 얘기했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가깝던 영서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 그게…"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뭐가 있구나. 침을 꼴깍 삼키며 영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팀장이 팀원들을 한 명씩 따로 불렀어. 불러선 너랑 일하기 어떠냐고. 힘들지 않냐고…"
"힘들지 않냐고? 질문이야 이간질이야?"
"나도 좀 어이가 없긴 하더라. 그래서 난 그냥 아무 말도 안 했어."
그제야 머리가 번쩍했다. 실은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었다. 뭔가 자기들끼리 수군대는 것 같고 왠지 모르게 그 대상이 나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쁘기도 했고 모여서 수군대는 뒷담화에 질리기도 해서 ‘또 뭐야. 진짜 다들 지겹다’ 하고 애써 외면했을 뿐.
일주일에 한 번씩 티 타임 겸 팀 모임을 가졌다. 일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고민되는 일, 새로운 정보 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 만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뒷담화의 장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심엔 언제나 박 선배가 있었다. 박 선배는 팀원을 대표해 여기저기 불려 가거나 팀장 외에도 다른 윗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는 일이 많았는데,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는 성격이 못되어 늘 쌓인 게 많았다. 그걸 팀 모임 때 다 푸는 듯했다. 가끔은 푸념인 듯하면서 은근슬쩍 자랑도 끼워 넣기도 하면서. 나머지 팀원들은 모르는 뒷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지난주에 이사님이 불러서 팀장이랑 같이 셋이서 점심 먹었거든. 근데 거기서 팀장이 뭐라는 줄 알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왜요 왜요? 또 이상한 소리 했어요?”
“아니 우리가 아직은 일이 여유가 있는 편이라는 거야.”
“헐 진짜요? 대~박. 자기는 일을 안 하니까 태평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해.”
“왜요. 한마디 하시죠. 직접 해보라고 하든가요.”
“암튼. 미친 거 아니냐. 진짜?”
하루는 혼자서만 뒷담화를 하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박 선배는 팀원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뭐 불만 같은 거 없었어?” 다들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선뜻 나서지 않자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어디서 풀겠어. 안 그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하나 둘 쌓인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한 것은. 처음엔 다들 조심스러워했지만 어느덧 서로의 얘기에 흥분하고 대신 화를 내주고 그러다 슬슬 말이 과격해졌다. 뒷담화의 대상도 바로 위 상사에서 다른 팀 사람, 임원, 대표까지 퍼져갔다. 얘기도 직접 겪은 얘기에서 일명 ‘카더라’하는 식의 출처가 불분명한 얘기, ‘그런 거 아냐?’ 하는 추측성 얘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뒷담화 능력 덕에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뒷담화 타임 아니 티타임 덕에 회사를 다 정복한 느낌이었다. 팀장, 이사, 대표할 것 없이 다 우리 밑에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점점 현타가 왔다. 팀장을 욕하는 박 선배를 보며 ‘내가 보기엔 둘이 똑같고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나 역시 누군가를 헐뜯고 있지만 제삼자가 보기엔 똑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은 날 보고 말했다. “애가 좀 활달한 면이 있어야 하는데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원.” 내 성격을 영 못마땅해하며 하는 말이었지만 나중에 성인이 되고 알았다. 그건 나를 탓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었다는 것을. 남들처럼 활발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였지만, 자신 대신 자신과 닮은 나를 비난하며 마치 자기는 아니라는 듯 얕은 위안을 삼았다.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딱 그 모양새였다. 점점 뒷담화에 함께 열을 올릴 수가 없었다. 한 발짝 물러나 오가는 대화를 듣고만 있자니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더 명확해졌다. 게다가 하는 말도 매번 같았다. “아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왜 저래?” 생각이 없었겠나. 다른 생각이 있으니 하는 말이고, 내리는 결정이겠지. 그 생각을 모르는 쪽이 더 우매한 건 아닐까. 보고 있을수록 그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심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한 패가 되어 나를 멀리 하고 있을 줄이야. 그것도 그렇게들 한마음으로 욕하던 팀장편에 서서. 무엇보다 그나마 가깝다고 여기던 영서마저 내게서 거리를 뒀다는 거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영서는 “난 아무 말도 안 했어”라지만 분명히 영서도 요 근래 날 대하는 태도가 데면데면했다.
한동안 잊었던 것 같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이에선 맘 놓고 가까운 존재란 없다는 걸. 지금은 가까워도 각자의 이익에 따라선 언제 어떻게 돌아설지 모른다는 걸.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이거늘 난 뭘 기대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지난 회의에서 나만 나서고 다들 침묵을 지켰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들이 이미 하나가 된 건. 갑자기 한꺼번에 지난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때도?’
영서에겐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권력자의 말엔 힘이 있다. 팀장이 나를 콕 짚으며 “같이 일하기 어때? 힘들지 않아?”하고 묻는 순간 팀원들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뭘 원하는 걸까. 어느 쪽에 서야 하나. 그러곤 빠르게 ‘이쪽이다’하고 판단을 내렸겠지. 영서에게 섭섭할 것도 없다. 그녀라고 다를까.
“그래 알았다”란 말만 남기고 카톡 창을 닫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타깝고 우습게 보였을지를 생각하니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진짜 한심한 건 누구였을까. 그들? 아니면 나?
순간, 넓은 사무실에서 나만 외딴섬에 홀로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옆자리 영서를 비롯해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다른 팀원들. 사무실 공기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그 후로 난 퇴사 때까지 본격적인 외톨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