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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따돌림당한 진짜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by 김자옥

퇴사 후 석 달째 어느 날. 핸드폰 진동에 별생각 없이 화면을 확인했다.

“잘 지내?”

영서였다. 심장이 뛰었다. 기분 나쁜 두근거림. 영서의 문자는 순식간에 나를 다시 지난 회사로 돌려놓았다. 오만정이 다 떨어졌지만 어쩐지 쉽게 떨쳐지지 않던 그곳. 이제 좀 잊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한참을 망설이다 카톡창을 열었다.

“어 잘 지내. 너는?

영서는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했다. 물어볼 말도 있다며. ‘이제 와서?’ 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들어나 보자 싶어.


멀리서 영서가 보였다. 영서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야아~ 잘 지냈어? 얼굴 좋아 보이네?”

영서의 얼굴에선 서먹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게 안부는 물었지만 들을 의사는 없어 보였다. 영서는 내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 말도 마” 라며 회사 얘기를 꺼냈다.

“요즘 회사 분위기가 진짜 말이 아니야. 팀장은 이제 완전히 자기 맘대로야. 얼마 전엔 글쎄 하아 …”

적당히 맞장구는 쳤지만 전혀 와닿지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제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될 줄 몰랐나?!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하며 한참 영서의 푸념을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찰나. 영서의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이젠 내 차례인가 봐.”

“뭐가?”

“팀장은 무슨 일만 생기면 다 나한테 떠넘기는데, 나가라고 압박하는 거 아니면 뭐겠어? 너 내보내고 이번엔 내 차례인 거지.”

“팀장이 그래? 자기가 날 내보냈다고?”

앞도 안 보고 걷다 갑자기 돌부리에 걸려 정신이 번쩍 든 사람처럼 영서는 두 눈만 껌뻑일 뿐 재잘거리던 입은 닫힌 채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사표는 내가 자진해서 낸 거야. 강 팀장 같은 사람 밑에서 더는 일할 수 없어서.”

영서의 눈은 동그래졌다. 여전히 입은 다문 채. 난 모른 척 물었다.

“팀장이 뒤에서 내 얘기 많이 하고 다녔나 보네?”

“어… 뭐…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잖아”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구려 애쓰는 영서가 좀 웃기고 안쓰러웠다. 둘 사이엔 잠시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영서가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팀장도 팀장인데 요즘 젤 얄미운 건 ‘박 선배’야. 너 나가고는 대놓고 자기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니까.”

내가 딱히 반응이 없자 영서는 내 눈치를 살폈다. 한참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얘기를 혼자 떠들던 영서마저 입을 다물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영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근데 너 혹시…” 영서는 다시 한번 내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대표님 찾아가서 강 팀장 얘기한 적 있어? 팀장이 게으르고 무능력해서 일하기 힘들다고...”

“에에? 말도 안 돼. 대표한테 그런 말을 어떻게 하냐? 내가 그랬대? 누가? 팀장이 그래?”

“아니… 박 선배가”

“박 선배? 박 선배는 그 말을 어디서 들었다는데?”

영서 말은 이랬다. 내가 대표를 찾아가 팀장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고, 팀장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했고 분풀이를 팀원들에게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마감을 더 앞당기며 우리를 쪼아댄 것도 다 그 이유였다고. 이 모든 걸 박 선배는 팀장에게 직접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팀원들은 그 말 그대로 믿었다고. 내게 한 번 확인도 없이.

“팀장이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했겠냐? 박 선배가 꾸민 거지. 와, 어이가 없네.”

“하긴… 그치? 사실은 나도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제야 알았다. 영서가 날 찾은 이유를. 확인을 하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은 언제나 사실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믿는다. 영서를 마주하며 그 단순한 진리를 새삼 느꼈다. 자기가 힘들어지니 이제 와서 진실을 묻는 영서가 얄밉고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내일도 그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했다.

이런 속사정도 모른 채 혼자 버터냈던 지난 시간이 공허하면서도 서글프게 다가왔다. 영서 말대로 이번엔 영서 차례인 걸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올 때보다 훨씬 무거웠다.

'차라리 나오지 말 걸 그랬나. 영원히 모르는 게 나았나. 아니다. 나왔으니 뒤늦게나마 사실도 밝혀진 거지.'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속이는 자, 속는 자, 그리고 이젠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자. 과연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할까.

그간 애써 잊고자 했지만 잊지 못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퍼즐이 완벽히 맞춰지지 않았던 것.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오늘 그 실마리를 찾았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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