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는 연구 대상이 많았다. 그중 단연 최고는 매일 직접 부딪혀야 하는 강 팀장이었다. 강 팀장은 자주 깜빡했다. 공지를 누락하고, 중요한 알림을 놓치고, 해야 할 기록을 빠뜨렸다. 이상했다. 그 실수들은 유독 내 눈에만 잘 띄었다. 나는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알렸다. 기분 상하지 않게, 자존심 건드리지 않게. 그때마다 팀장은 놀란 듯 답했다.
“아 그래? 내가 깜빡했나 보네. 땡큐.”
하지만 팀장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당황하는 척이라도 했던 팀장은 점점 뻔뻔해져 갔다. 마치 내가 개인 비서라도 되는 양, 내 알림을 보고처럼 받아 ‘ok’라고 답했다. 그 말투가 은근히 거슬렸다. ‘뭐지, 이 사람?’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했다.
한 번은 이사에게 메일이 왔다. 이사는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며 팀원들을 참조에 넣었다.
“여기는 자기네 전송 시스템을 써달라고 했다는데 이건은 왜 메일로 보냈나?”
글에서 이사의 화를 간신히 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얼른 첨부 파일부터 열어 확인하니 내가 맡은 건이었다. 게다가 회사의 가장 큰 거래처이자 항상 까다롭고 예민하게 구는 곳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공지를 놓쳤나 싶어 확인해 봤지만 관련 공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 씨!’ 욕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사과 서신부터 써야 하나, 하고 있는데 팀장에게 메일이 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앞으로 주의하도록! 사과 서신 작성해서 결재 올리세요.”
메일은 나를 딱 지목했고 이사가 참조로 되어있었다. 마치 ‘얘래요. 얘가 그랬대요’라며 고자질이라도 하듯.
‘와… 어쩜 사람이 이러지?’
그간 눌러왔던 게 터져버렸다. 도저히 이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여러 정황을 종합해 팀장의 실수임을 분명히 밝혔다. 팀장과 이사가 동시에 알 수 있도록. 그러고도 마음이 말끔하지 않았다. 도대체 팀장은 왜 이러는 걸까. 반복되는 실수 거기에 책임 회피까지. 뭐가 문제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이해되지 않는 건 팀장만은 아니었다. 이사는 평소에는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땐 꽤나 엉뚱한 판단을 내렸다. 회사에 별로 도움이 안 될 ‘노 이사’를 영입한 것만 해도 그랬다. 앞에서는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 같지만 뒤에서 내리는 결정은 지극히 권위적이었다.
이사는 어쩌다 직원들이 힘들다는 얘기라도 하면 미소 띈 얼굴로 말했다.
“요즘 AI도 계속 발전하고, 벌써부터 구조조정에 들어간 데도 많아. 우리는 그러진 않잖아?”
이건 위로인가 협박인가. 나는 꽤 모욕적으로 느꼈지만, 다들 ‘그건 그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민한 건가. 그런데도 어느새 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숨은 의도를 찾게 됐다.
사실, 사람만 앞뒤가 다른 건 아니었다. 시스템 자체가 모순 그 자체였다. 회사는 지겨울 정도로 ‘주인의식’을 언급했지만, 주체적으로 뭔가를 생각해서 의견을 낼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회의 때 건의 하나만 해도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게다가 주인의식을 논하는 것 치고는 '10분 이상 자리를 비우지 마라' 같은 세세한 규율이 계속해서 생겼다. 통제를 원하는 조직일수록 잡다한 규칙이 늘어난다. 누가 주인을 이렇게까지 통제한단 말인가. 회사에서 말하는 주인의식은 결국 ‘더 많은 일을 스스로 찾아 하라’는 말의 고상한 버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쉽게 누군가와 나눌 수 없었다. 이런 모순을 보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가끔 다들 긍정할 때 “근데 그건”하고 다른 방향을 얘기하면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얜 왜 이렇게 삐딱해?’하는 눈초리였다.
푸코는 말했다. 정상과 비정상은 권력이 정한다고. 회사엔 미리 정해 놓은 정상의 모습이 있었다. 모두가 그 틀 안에 순응하며 자신이 ‘정상’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틀을 의심하는 나는 언제나 모난 사람, 즉 비정상이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아니, 애초에 정상이라는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