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팀의 김 부장은 특별한 존재였다. 팀장도 부서장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그를 조심스레 대했다. 대표가 직접 발탁한 인재, 종종 대표와 독대를 가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권력 앞에서 몸을 낮추는 건 인간의 본성일까. 강 팀장은 자신이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김 부장의 말이라며 쉽게 자기 의지를 꺾었고, 박 선배는 마치 우리 팀 팀장이 김 부장이라도 되는 듯 많은 일을 그에게 의논하며 의지했다.
김 부장 눈에 들려는 건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장님, 오늘 왜 이렇게 화사하세요? 얼굴에서 빛이 나요.” “이런 옷 아무나 소화 못 해요.” 듣고 있자면 얼굴의 빛이 아니라 아부의 광채가 번지는 것 같았다.
몰리에르의 희곡 『인간혐오자』 에서 주인공 알세스트는 인간의 가식과 위선에 혐오를 느끼며 말한다.
“그렇게 질 떨어지는 알랑거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아무리 최고의 영광을 쏟아부어도 결국 싸구려 잔치에 불과해.”
그들을 볼 때면 나도 알세스트의 마음이 되었다. 다만 나는 알세스트처럼 외치지 못했다. 대신 침묵 속으로 더 깊이 숨어들었다.
그 거리감은 점심시간에도 이어졌다. 점심시간엔 보통 회사에 대한 불만을 나누었지만 소재가 떨어지면 언제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연예인이나 패션 등의 잡다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계속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귀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야 하나’
그들과 난 분명 같은 공간 같은 자리에 있지만 우리의 거리는 꽤 멀게 느껴졌다.
피크는 이사와의 점심이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부터 그는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세계 트렌드가… 지금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 분위기가… 우리도 그에 맞춰서 변화를 시도해야…”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얘기였다. ‘그래서 우린 어떤 변화를 할 생각인데?’란 물음표가 떴지만 팀장은 옆에서 “맞는 말씀입니다”를 연발했고, 팀원들은 진지한 얼굴로 경청했다.
누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지를 보면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점심시간 한 시간의 8할 이상이 이사의 말로 채워졌다. 밥 한 끼로 그는 권위를 샀고, 얻어먹은 대가로 나는 시간과 인내를 지불해야 했다.
회사에선 진심보다 말의 기술이 중요했다. 진심은 눈총으로 돌아왔고, 공허한 말일수록 환영받았다.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런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고. 하지만 박 선배를 보면서 흔들렸다. 김 부장에게 헌신하는 그를 볼 때면 솔직히 한심하다 싶었다. '자기 생각은 있는 걸까, 진심이긴 한 걸까.'
그런데 모두가 탐탁지 않아 하는 업무 개편을, 그것도 박 선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국 해냈을 때는 내가 틀렸나 싶었다. 뒤에서 김 부장이 힘을 써줬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을 위한 오랜 설계였던 걸까. 진짜 한심한 건 오히려 나였을까.
무엇보다 결정타는 왕따 사건이었다. 박 선배가 꾸며낸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김 부장은 그대로 믿어줬다. 그뿐인가. 앞장서서 사실인 양 퍼트리고 다녔다. 김 부장의 말이니 팀원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왕따 사건은 평소 그들과 적당히 호흡을 맞추지 않은,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몰랐던 대가였을까. 그런 것치곤 너무 가혹하지 않나.
어쩌면 진심이야말로 이 조직에선 가장 비정상적인 태도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