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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공감은 따뜻함이 아니라 무거운 바위였다

by 김자옥

경력직으로 입사한 회사였다. 낯선 조직 속에서 혼자 겉돌지 않게 먼저 말을 걸어준 건 박 선배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어쩐지 성향도 비슷한 것 같아 나는 박 선배에게 금방 친밀감을 가졌다.

박 선배도 내가 편하게 느껴졌는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그는 자신의 얘기를 술술 꺼냈다. 부모님은 일찍이 이혼했고, 어머니가 혼자 아이들을 키웠는데 오빠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 유독 인색했다고 했다. 늘 오빠에게 양보하라면서. 박 선배의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당시의 섭섭함과 설움이 묻어 있었다. 오래된 감정이었지만, 그 말들 사이로 아직 덜 마른 상처가 비쳐 보였다.


난 박 선배의 얘기에 푹 빠졌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기분이 들었다. 어느새 난 박 선배의 마음이 되어 박 선배의 엄마가 원망스럽고 보지도 못한 오빠가 얄미워졌다. 나는 박 선배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가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대신 나서 주기도 하고 간혹 무례한 사람이 있으면 대신 씩씩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내가 승진에서 누락하는 일이 생겼다. 납득할 수 없었고 상부에 항의했다. 박 선배는 커피나 한 잔 하자며 날 따로 불러냈다.

“그냥 넘어가. 회사에 있다 보면 별 일이 다 생기는데 그때마다 따지면 서로 힘들어."

박 선배의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속상하겠다’나 ‘네 입장에서는 화날만하지’라는 말을 내심 기대했던 난 조용히 있다가 억울하게 선생님에게 “왜 그렇게 떠들어”라며 꿀밤 한 대를 맞은 기분이었다. 박 선배라면 내 마음을 알 거라 믿었는데, 갑자기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서운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박 선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였다. 멀어졌던 게 언제였나 싶게, 박 선배가 지금 어떻게 지낼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원망하던 어머닌데 막상 세상에 없으면 얼마나 허망할지 직접 보지 않아도 선배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초췌한 박 선배 모습이 보였다. 순간 울컥했지만 참았다. 본인도 간신히 참고 있을 걸 테니. 바닥에 힘없이 앉아있던 박 선배는 회사 사람들을 보곤 얼른 일어났다. 내가 선배에게 다가가자 박 선배는 “와줘서 고마워”라며 내 손을 잡았다. 박 선배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걸 보자 참아볼 새도 없이 나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박 선배는 내게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둘이 되게 가깝나 봐요?”

회사의 누군가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후 박 선배는 출근했다. 여전히 마음이 짠한 나와 달리 선배는 정리가 된 모습이었다.

"더 아픈 것보다 이제는 편히 쉬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해. 엄마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거든.”

그는 이미 마음이 가라앉은 듯 담담했지만, 나는 아직 지난 장례식의 냄새 속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의 감정이 내게로 옮겨 붙은 것처럼.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인의 아버지 상.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동갑내기인 지인 마음이 얼마나 쓸쓸하고 황망할지를 생각하니 장례식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가슴이 저려왔다. 넋이 반쯤 나간 지인의 얼굴과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니 마치 내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 마음이 아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당혹스러웠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가깝진 않은데. 이럼 좀 주책인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같이 간 사람들은 ‘왜 저래?’ 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지인의 아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마치 ‘네가 그럼 난 뭐가 돼’라는 듯.


이런 감정은 꼭 가까운 사람에게만 드는 건 아니었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 소식을 보고 나면 며칠 동안 힘들었다. 마치 내가 사건의 피해자나 그 가족이라도 되는 듯 그들이 받은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문득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얼마나 아팠을까”하고 지난 사건을 얘기하면 “그걸 아직도 생각해?”하는 말이 돌아왔다. “너무 끔찍하잖아”라고 답하면 그들은 “그걸 뭘 계속 생각해”라는 반응이었다.


자주 이러다 보니, 웬만하면 끔찍한 얘기는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한다. 하지만 주위에선 종종 “유난이다”라는 사람이 있다. “네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반응해”라며.

한동안은 정말 내가 유난인가 싶었다. 다들 멀쩡한데 왜 나만 이렇게 에너지를 뺏길까. 왜 나만 감정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온몸 깊숙이 파고드는 걸까. 내게 공감은 따뜻함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였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이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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