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과잉 활동인이 사람에게 빠질 때
강 팀장은 어제와 오늘, 오늘 중에도 오전, 오후가 기분이 다른 사람이었다. 출근할 때 싱글벙글해서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네?’ 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또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인상을 쓸 땐 늘 뭔가 오버스러웠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가 멀리 있는 관객도 알아볼 수 있게 과한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처럼. 자기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다 알아보라는 듯. 그럼 팀원들은 속삭였다.
“왜 또 저래?”
“몰라. 또 위에서 한 소리 들었나.”
기분만큼이나 일 처리도 왔다 갔다 했다. 같은 내용의 보고라도 어느 땐 일사천리로 통과가 되고 어느 땐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며 수정을 요구했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도 태도가 달랐다. 같은 실수라도 누구에겐 “수정해서 나가도록 해” 정도로 그치고, 좀 만만하다 싶은 사람에겐 볼펜으로 서류를 탁탁탁 치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이거, 이거. 응?”
업무 분배도 연장선에 있었다. 업무 상황을 보고 분배하는 대신 감정에 더 치우쳤다. 영서가 참다못해 날 찾아와 나가라고 압박하는 것 같다며 하소연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강 팀장은 좀처럼 싫은 티를 못 내는 영서를 유독 가볍게 대했다.
난 그런 팀장의 행동이 몹시 거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조직의 리더로서 할 행동은 아니었다. 기분이 금방 바뀌는 타입일 수는 있어도 업무에까지 영향을 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일을 어떻게 기분으로 하지. 생각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강 팀장의 행동이 눈에 띄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강 팀장은 팀원들 앞에서 그날 자리에 없던 한 팀원에 대해 불만 섞인 말을 했다. “고집이 세가지고” 처음엔 그저 가벼운 투정쯤으로 생각했지만 발언의 수위가 점점 아슬아슬했다. “혼자 잘난 줄 아나. 말을 안 들어.” 듣기가 불쾌했다. 자기 팀원에 대해 이렇게 말해도 되나. 그것도 없는 자리에서.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결국 내뱉지는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참지 않고 뱉은 말들 때문에 미운털이 박힌 터였다.
팀장이 자리를 뜨고 팀원들끼리 남았을 때 난 먼저 말을 꺼냈다.
“뭐 하는 거야. 팀장이 이래도 돼?”
“그러게 말을 저렇게 하냐.”
영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나머지 팀원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때 박 선배가 한 마디 던졌다.
“좀 고집이 센 건 사실이지.”
나와 영서는 눈이 마주쳤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야기가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몰라도 당사자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는 이사실로 향했다. 이사는 강 팀장을 불렀고 어떤 말을 들었는지 강 팀장은 해당 팀원에게 사과했다. 일은 이렇게 일단락이 났다.
사건은 정리됐고 당사자도 그 정도에서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가볍지?’란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졌다. 그때부터 팀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이 쓰였다. 계속 ‘왜 저래’라면서.
한 번은 또 어떤 일로 팀장의 행동이 내내 거슬렸다. 급기야는 화가 올라오기까지 했다. 나에게 한 행동도 아닌데도. 난 영서에게 카톡을 보냈다.
“강 팀장. 왜 저래. 나이가 몇인데 행동은 꼭 철부지 애 같지 않아? 저게 어른이 할 행동이야?”
영서는 답했다.
“원래부터 그랬잖아. 신경 꺼. 괜히 너만 피곤해.”
“원래부터 그런 게 어딨어. 다른 사람들은 감정이 없나. 다들 힘들고 화나도 적당히 감정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거지.”
갑자기 흥분하는 내가 어리둥절했는지 영서는 “그렇긴 한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라며 날 달랬다. 안 되는 사람이 어딨냐고 다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괜히 죄 없는 영서에게 화풀이하는 것 같았다.
내게 강 팀장은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 혹은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이 사람은 왜 이럴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난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집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할까. 아이들에게도 팀원들에게 하는 것처럼 가볍게 행동할까. 그럼 꽤 싫어할 텐데.’
강 팀장 못지않게 알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다름 아닌 박 선배였다. 강 팀장처럼 뭐라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가끔씩 ‘응? 이거 뭐지?’ 하는 포인트가 있었다. 남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꽤 있는 것 같다가도 불쑥 내뱉는 한 마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를 테면 아까 말한 것처럼 “고집이 센 건 사실이지” 같은 말을 할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윤 부장이 퇴출될 때였다. 박 선배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분명 발언의 기회도 자격도 있었다. 이사는 팀을 대표해서 팀장 외로 박 선배를 불렀다.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이건 아니다’는 어필을 해볼 만했지만 박 선배는 강 팀장처럼 이사의 의사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데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겉으론 걱정하는 척을 하면서.
나는 크게 실망했다. 이건 조용하고 수동적인 성격의 문제라고 하긴 어려워 보였다. 정의와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머릿속은 온통 강 팀장과 박 선배 생각이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일하는 도중에도, 퇴근 후 집에서도. 하루는 남편이 말했다.
“팀장이랑 박 선배라는 사람 귀 엄청 따갑겠는데?”
“뭐가?”
“아니. 자기 맨날 회사 얘기하면서 둘 얘기밖에 안 하잖아.”
옆에서 아이도 말했다.
“맞아. 나도 두 사람 얘기 많이 들었어.”
“내가 그랬나? 그랬던 것도 같고.”
맞다. 나는 그들 얘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둘만 해결되면 회사 생활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해결이라는 게 뭘까. 그들이 변하면? 내가 이해하면? 아니면 그들이 나가면? … 잘 모르겠다. 그냥 이 불편함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내가 그들에게 ‘집착’했던 것 같다고 생각한 건 퇴사하고 나서다. 회사를 나와서도 한동안 그들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집착인데 하며.
나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매였을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영서나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가 보다’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답을 찾고 싶었다.
답은 우연히 찾아왔다. 독서모임에서였다. 어느 멤버가 말했다. “저는 이건 융이 말하는 그림자라고 생각해요.” 그림자? 그때 번뜩 뭔가가 스쳤다. ‘나도 혹시?’
사람은 자라면서 ‘보이면 안 되는 감정’을 숨기며 산다. 나도 그랬다. 울고 싶어도 참았고, 화가 나도 삼켰다. 그렇게 눌러 둔 감정은 몸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림자처럼 숨어 있다가 누군가 그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면 불편함과 부러움이 동시에 올라온다.
어쩌면 나도 그랬는지 모른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통제하며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모습에 나를 맞추며 살았는지도. 그런 탓에 조금은 멋대로고 일관성 없는 강 팀장이나 박 선배를 보며 남보다 더 부대꼈던 건 아닐까. ‘나도 멋대로 살고 싶어’라는 마음이 내 안의 어딘가에도 실은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다시 ‘그럼 나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통제했을까’란 생각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 탓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어린 나는 늘 불안했다. 그래서 일찍 다짐했다.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그 다짐이 내 기준이 되었고, 누군가 그 기준을 벗어날 때 나는 유난히 힘들었다.
결국 내가 나를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자 씁쓸해졌다. 그들에게 매여왔던 긴 시간도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시간이 완전히 헛된 건 아니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진짜 나만의 문제일까? 그들이 이상한 건 아니고?’라는 물음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