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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7. 2019

제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요?

어려서부터 여러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오면 안 되는 자리라도 온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했다. 대화에 잘 끼지도 못 했을뿐더러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라는 말은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특히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 그랬다. 쑥스러움이었는지 무서움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개조차 들기가 힘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이런 모습은 큰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밝고 당당한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친구들과 비교하면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가끔 상사가 "OO씨는 늘 밝아서 좋아"라고 동료를 칭찬이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더 기가 죽었다. '옆에 있는 나는 보이지도 않는구나', '나도 저래야 되는데'하면서 말이다. 


끝도 없이 작아지는 내가 싫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기가 죽을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그럼 좀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당당해지자’를 외쳤다.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듯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다. 


'당당해지자, 당당해지자' 


지금도 이 주문은 계속되고 있다. 가끔 이유도 없이 소심해지고, 작아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묻는다.

‘너 잘못한 거 있어? 왜 기가 죽어?’

그러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런 노력은 가끔 나도 놀랄 정도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나도 감당이 안 될 만큼의 당당함이 나오기도 한다.



회사에서 한 상사와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었다. 난 분명 보고를 올렸는데 상사는 못 받았다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중간에서 누락이 되었다. 상사에게 '보고가 전달이 잘 안된 것 같다, 다시 올렸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상사는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일을 왜 번거롭게 하냐는 것이었다. 난 좀 어이가 없었다. 나의 실수도 아니었을뿐더러 충분히 상황을 설명했고, 내가 올린 보고 날짜까지 확인시켜줬는데 그는 자세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조건 화를 냈다.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했다. 다시 설명했다. 상사는 더 화를 냈다. 잠시 이성을 잃은 듯했다. 듣고 있자니 막무가내식의 분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쌓인 스트레스를 나에게 다 풀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느껴졌다.    


“제가 정확히 어떤 걸 잘못했나요?”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상사는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잠시 대답이 없더니 어디서 말대꾸냐, 그 태도는 뭐냐라는 꼰대 중에 꼰대나 할 법한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차근차근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내가 한 처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상사는 이 와중에도 할 말을 다하는 내 모습이 어이가 없었던지 한 마디 했다.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해?”

“제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뭔가요?”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이 나와 버렸다. 나도 놀랐다. 상사는 더 놀란 듯 보였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크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할 말이라도 생각해 내려는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집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예민해졌나 보네. 미안해.”


이번엔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에게 함부로 하지 않았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나? 당당해 지자. 혹시 나의 당당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쪽의 문제이다. 그쪽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당당함을 가끔 ‘기센 애’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보다 우월해 보이는 태도가 못마땅해서 깎아내려서라도 열등하게 만들고 싶은 심리이다.  


난 아이에게도 어른이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니 네 생각은 정확히 표현하라고 한다. 대신 예의는 갖추라고 한다.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다시 물어서 확인하라고 한다.  

가끔 이 가르침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있다. 


“엄마, 엄마는 지금 숙제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난 아닌 것 같은데?”

“그래? 넌 그럼 지금 뭐가 중요한 거 같은데?

“숙제는 내가 내일 학교 가서 쉬는 시간에 해도 되니까, 지금은 노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오늘 하나도 못 놀았단 말이에요.”

“아니, 숙제를 먼저 해야지.”

“제 생각을 얘기하는 거예요. 엄마가 생각을 정확히 얘기하라고 했잖아요.”


이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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