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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Sep 21. 2020

그래도 뒤끝은 없다고?

뒤끝 없다는 사람들

“그래도 난 뒤끝은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랑처럼 말한다. 내가 본 뒤끝 없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감정이 빨리 끓어오르고 빨리 식는다. 감정이 끓어올랐을 때는 할 말 못 할 말을 구별하지 않는다. 아니 구별하지 못한다. 열 받은 자기 자신의 감정만 중요해서 남의 기분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감정이 식으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소와 똑같이 행동한다. 어제까지 혹은 좀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낼 것처럼 굴었는데 말이다. 가끔은 농담도 한다. 이럴 땐 소름이 돋는다. 이 사람 괜찮은 건가 살짝 걱정도 된다. 억지를 자주 부린다. “걔가 그런 맘이 있으니까 나한테 지금 이러는 거 아냐.” , “나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런 말을 해.” 등등. 혼자서는 심각하지만 누가 들어도 억지다. 찜찜한 게 제일 싫다며 자기 찜찜한 기분을 남김없이 털어낸다. 말로 다 풀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찜찜함은 생각해 보지 않는다. 상대방의 결점이나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얘기도 다른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뭐 어때?”라고 하면서. 대신 자기 얘기를 그렇게 했다가는 난리가 난다. 별일 아닌 것에도 자존심 운운한다. 자존심을 건드렸네, 나를 무시했네, 자존심이 상해 더는 못 살겠네, 라며 자존심에 목숨을 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자존심은 그만큼 배려하지 않는다. 사과를 쉽고 간단하게 한다. 그리고 항상 미안하다는 말 뒤에 ‘근데’가 붙는다. “미안해. 근데 너도 잘한 거는 없잖아.”, “말 심하게 한 건 내가 잘못했어. 근데 네가 먼저 기분 나쁘게 했어.” 사과인지 아닌지 모를 사과를 해놓고 받아주지 않으면 또 열을 낸다. 내가 이렇게 사과를 하는데 왜 무시를 하냐며. 그러면서 오히려 상대방을 비난한다. 뒤끝 있다고. 대신 상대방의 사과는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과를 해라,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 말로만 사과하지 말라는 둥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다. 절대 쉽게 잊지도 않는다. 두고두고 예전 일을 꺼낸다. “그때 니가 나한테 그랬잖아”라며 몇 년 전 얘기도 하고 또 한다. 말하면서 또 그때로 돌아간다. 또 흥분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주변인들과 자주 트러블이 생긴다. 보네 안 보네 하면서. 


내가 보기엔 전혀 뒤끝이 없다는 말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늘 자기는 뒤끝은 없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뒤끝’ 뒤에 붙는 조사 ‘은’이다. 다른 건 몰라도 뒤끝은 없다는 거다. 그거 하나가 자랑거리라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그건 자랑거리가 아니다. 내 귀에는 ‘뒤끝은 없어’라는 말은 ‘난 배려 같은 거는 몰라’ 혹은 ‘난 감정 조절을 할 줄 몰라’ 정도로 들린다.     

 

스스로 뒤끝이 없다는 사람치고 정말 뒤끝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뒤끝이라는 말은 남의 잘못을 한번 따끔히 혼내고 두 번 다시 얘기하지 않을 때 혹은 사과를 받았으면 그걸로 끝내고 다시는 들먹이지 않을 때처럼 남을 대하는 태도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연히 그 판단은 남이 해주는 것이지 스스로 하는 게 아니다.    

  

“뒤끝이 없는 사람은 없다. 뒤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정말 뒤끝이 없는 사람은 뒤끝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박인기 경인교대 교수의 말이다.(한국교육신문, 2008.08.01.) 크게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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