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재를 올렸는데 상사가 꼼꼼히 체크하는 대신 “잘 했지?”라고 물을 때가 있다. 때로는 “알아서 잘 했겠지. 내가 더 볼 필요가 있나?”라며 보고서를 대강 훑어보고는 사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우선은 나를 믿어주고 인정해준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다. 그러면서도 약간은 불안하다. 내가 정말 잘 했나? 실수는 없나? 자리로 돌아와 다시 하나하나 살피게 된다. 혹시라도 실수가 발견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몇 번이고 더 확인한다.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확인하고 다음 과정을 진행한다. 다음부터는 더 책임감을 갖고 신경 쓰게 된다. 믿어 준 만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반대로 결재를 올릴 때마다 매번 사사건건 지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까지 신경 쓸 건 아닌데 하는 부분까지 체크를 한다. 때로는 미리부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일일이 지시하기도 한다. 이럴 땐 앞선 경우보다는 덜 꼼꼼해진다. 상사가 다시 확인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차피 상사 스타일대로 고칠 거라는 생각도 있다. 이때는 정확히 보다는 빨리 하는 편을 택한다. 빨리 결재 올려서 빨리 체크 받는 쪽이 낫다 생각한다. 상사가 최종 확인을 했다는 생각에 책임감도 덜하다.
이번엔 구글의 인사 책임자 라즐로 복의 이야기다. 라즐로 복이 맥킨지에서 일할 때였다. 상사 앤드류는 라즐로 복에게 고객들에게 제시할 시장분석 보고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러나 절대 앤드류는 라즐로 복이 작성한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검토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일일이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그 대신 앤드류는 라즐로 복에 대한 기대치를 높게 설정했다. 라즐로 복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가면 앤드류는 매번 “내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라즐로 복으로 하여금 스스로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보고서를 만들게 했다. 라즐로 복이 “검토하실 필요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면 앤드류는 다시 확인하는 일없이 곧바로 고객에게 보냈다. 이는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에 나온 이야기다.
회사는 늘 인재를 찾는다. 신입은 물론 경력직을 뽑을 때도 가능한한 지원자 중 최고의 스펙, 최고의 경력을 갖춘 사람을 택하고, 면접도 여러 번 본다. 그렇게 선택되어 회사에 들어온 인재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그야말로 초롱초롱하다. 의욕도 열의도 넘친다. 그 에너지는 지켜보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된다. 새 사람이 들어오면 사무실 분위기도 달라진다. 잃어가던 활력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그 넘치던 에너지가 얼마 못 가 금방 사그라들 때가 있다. 상사로부터 믿음을 못 받는다고 느낄 때다. 일정 적응 기간이 지나면 믿고 맡겨도 될 법한데 계속해서 하나하나 체크하는 상사가 있다. 상사의 검토나 결재 사인 없이는 무엇 하나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다. 심지어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기초적인 것까지 일일이 챙기고 지시한다. 그럴 때면 심정이 복잡해진다. 설마 내가 이것도 모를까 봐 알려주는 건가? 아님 실수하지 말라는 뜻에서 얘기하는 건가? 때론 너무 당연한 걸 지시해서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도 있나? 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내가 그렇게 못미덥나? 란 생각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내가 여기서 과연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그럼 의욕도 사라지고 생각도 사라진다. 사소한 지적도 쌓이다 보면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내 생각 또는 내가 하는 행동은 항상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본인 스스로도 상사의 결재 없이는 불안해서 일을 진행하기 어렵다.
타인의 긍정적 기대나 관심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이는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조각가 피그말이온을 보고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사랑에 감동하여 조각상을 실제 여인으로 만들어줬다는 신화에서 비롯됐다. 반대로 부정적인 낙인찍기가 실제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스티그마 효과라고 한다. ‘스티그마’는 빨갛게 달군 인두를 가축의 몸에 찍어 소유권을 표시했던 낙인을 말한다. 믿음을 주는 사람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믿어주는 만큼 더 잘하고 싶다. 이와 반대로 날 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딱 그만큼만 행동하고 싶은 게 또 사람 마음이다. 학창시절 한창 공부 중인데 “공부하니?”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하기 싫어졌던 경험 있지 않나? 그 마음과 같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인재를 돌덩어리로 만드는 것도 전부 상사의 믿음에 달려 있다. 직원은 늘 부족하고 어딘가 못 미덥다는 생각은 낙인찍기나 다름없다. 이미 낙인이 찍힌 사람은 굳이 열심히 노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 또 상사는 직원들은 하나같이 게으르고 생각이 없다는 낙인을 찍는다. 악순환이다.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 나온 대사다. 흔히 상사들은 ‘잘 해야 믿어주지’ 란 생각을 갖는다. 순서가 틀렸다. 믿어줘야 잘 하는 법이다. 일단 믿어봐라. 생각보다 잘한다. 제법 아이디어도 뛰어나다. 어쩌면 나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지켜보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부족하다 싶으면 마지막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줘라. 처음부터 내미는 손은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 감흥도 없다. 직원으로부터 뛰어난 성과를 바라는가? 그럼 바라는 성과만큼 먼저 믿어줘야 한다. 잊지 않길 바란다. 先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