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사에서 오랫동안 부서장을 맡았던 분이 퇴직을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 누가 올라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모아졌다. 현 부서장 바로 밑의 부장 몇 명이 후보에 올랐다. 회사 나름의 판단으로 그중 한 사람을 부서장 자리에 앉혔다. 회사의 평가나 만족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부서원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는 듯 보였으나 능력이 따라주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운 일이라도 들어오면 긴장하고 예민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좀 달라지겠지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부서장은 일어난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고 걱정을 했는지 몰라도 부서원들은 부서장을 걱정해야 했다. 스트레스 과다로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건 아닌지, 얼굴이 누렇게 뜬 게 지금도 어디가 안 좋은 건 아닌지. 보는 사람들이 더 힘이 들었다. 자리에서 내려오든가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늘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진짜 저러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는 다행히 죽기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들 한시름 놓았다.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지난번 후보에서 탈락한 사람 중 하나가 올라가게 되었다. 사람들 기대가 컸다. 전 부서장이 워낙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임 부서장은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다. 나름 똘망똘망해 보였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자기와 친한 사람 실수는 쉽게 덮어주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일을 몰아주고, 평소 거슬렸던 사람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했다. 날이 갈수록 부서원들과도 불통이 되었다. 친한 사람 몇 명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다. 실망감이 컸다. 빨리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해 줬으면 했다. 멀쩡한(?)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끌어내릴 수도 없고(사실 직원들에게는 그럴만한 힘도 없고), 자진해서 나가기만을 바랐지만 내가 나가는 편이 더 빠를 듯했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우리끼리 다음 후보를 생각해 봤다.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남은 사람들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여기 사람이어야 하나? 다른 데서 영입해봐도 될 텐데. 유능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내 의견을 슬며시 비춰 보였다.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여기는 내부 사정을 잘 알아야 하잖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오면 아무래도 힘들지.” 그런가? 라고 답했지만, 여기가 뭐 그리 특별한 곳이라고, 내부 사정? 알고 보면 별것도 없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중간에 들어온 소위 말하는 경력사원이었다. 회사에 적응을 해가면 갈수록 회사의 문제점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을 몇 단계를 거친다든가, 진짜 중요한 일은 놔둔 채 그다지 중요치 않은 일에 혈안이 된다든가, 다른 곳에서는 이미 생략한 일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든가. 심지어는 없어도 될 사람 몇 명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눈에 봐도, 또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들을 내부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지적하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네가 여길 잘 몰라서 그래.’라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직접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네가 중간에 들어와서…”라며.
내부 사정은 내부 사람이 제일 잘 알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느껴질 뿐이다. 가족 간의 문제도 그렇다. 심지어는 부부간의 문제까지도. 엄청 뭔가 복잡한 일들이 있고, 그들만의 뭔가가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별거 없다. 서로 양보를 안 하려고 한다든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문제의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채 다른 곳만 들쑤셔 대니 문제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해결해보고자 해도 더 복잡해질 뿐 풀리지는 않는다. 이럴 때는 오히려 외부의 시선이 필요하다. 외부에서 보면 아주 간단하다. 속 끓이는 나에게 친구가 옆에서 “그냥 네가 좀 양보해. 그럼 되겠네.”라고 야속하게 조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밖에서 보면 해답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부 사정은 내부 사람이 제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