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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Nov 21. 2020

어른의 사랑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단체 톡방이 있다. 하루는 주제가 ‘집착’과 ‘섭섭함’에 대해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한 분이 “저는 아침에 신랑에게 사랑하냐고 물었더니 입금하라고 해서 서운해하던 중이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착하게 된다고 했다. 물론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진심도 꽤 느껴졌다. 연인 사이 혹은 부부 사이에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나 사랑해?” 아니면 “나 얼마나 사랑해?”가 아닐까 한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 걸까. 왜 그렇게 말로 확인을 받으려는 걸까. 또, 날 사랑하냐고 묻는 사람 중에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사람들이 있다. 사랑한다면서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해주고 싶은 방식의 사랑을 주는 사람들. 돈이 많으면 돈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시간이 많으면 시간으로 표현한다. 아니면 상대방 입장보다 자기 입장에서의 사랑을 준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까지 사랑을 하는데 너는 왜 그러지 않냐며 혹은 왜 그걸 몰라주냐며 섭섭함을 드러낸다. 아주 가끔은 고마운 줄도 모른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식물을 사랑한다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그가 식물마다의 특징도 모른 채 물을 자주 주지 말아야 할 화초에 매일같이 물을 주고, 햇볕보다 그늘을 더 좋아하는 화초를 햇볕 잘 드는 곳에 놓아둔다면 그건 사랑하는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매일 물을 줘야 하는 화초에 생각날 때 한 번씩 넘치게 물을 준다면 화초 입장에서는 그걸 사랑이라고 느낄까? 매번 목이 마를 대로 말라야, 어느 때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받아먹는 물을 화초는 사랑이라고 여길까?    


                                    © prudenceearl, 출처 Unsplash


사랑한다면서 아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얘기하면 아이는 생각한다. 사랑한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아내에게 온종일 가족이 함께하는 일정을 제시하며 내가 가족을 위해 이런 것까지 준비했다고 하는 남편에게서 아내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사랑의 어원이 사량思量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 생각이 많이 난다. 좋은 곳을 갔을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그리고 일상에서 아무 때나. 그렇게 생각의 양이 많아지는 걸 사랑이라고 한다는 거다. 아니면 상대방을 많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게 사랑이라는 뜻에서일 수도 있겠다. 근데 난 좀 생각이 다르다. 내 생각을 아무리 많이 해준다고 해도 내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나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지만 행동에 변화가 없으면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하기 어렵다. 내 생각을 많이 했으면 내가 바라는 것, 바라지 않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이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 줘야 한다. 그럴 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저 보고 싶고, 생각나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말로는 사랑한다면서 여전히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을 지속한다면, 또 매번 사랑은 한다면서 상대방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 대신 자신이 생각하고 바라는 모습이 되어주길 끊임없이 요구한다면 그건 절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연애는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랑은 감정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이성의 영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랑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연애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랑은 철든 어른들만 할 수 있습니다.” <천 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에서 저자 문요한이 한 말이다. 그는 또 연애는 노력 없이 되지만 사랑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말로만 하는 사랑, 가슴만 불타는 사랑은 어릴 때 경험으로 충분하다. 어른이 된 이제는 사랑은 말이나 가슴이 아닌 행동으로 해야 한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어른이면 어른의 사랑을 해야 한다.      


종종 본인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으면서 상대방에게서는 그런 걸 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배려와 존중을 받고도 받았는지 모른다. 모든 걸 상대방 입장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래서 항상 받는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다. 또 그래서 항상 날 사랑하긴 하는 거냐고 묻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사랑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 주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거다.      


제발 사랑하냐고 묻지 말길 바란다. 그걸 꼭 물어야 하나? 느낌 안 오나?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보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지, 또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내 사랑부터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어른의 사랑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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