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사람’, ‘솔직한 얘기’, ‘솔직히’ 우리는 ‘솔직’을 참 많이 강조한다. 그리고 솔직한 건 다 좋은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할 만큼 ‘솔직’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럼 대체 ‘솔직함’은 뭘까? 뭐든 다 말하는 걸 솔직하다고 하는 걸까?
‘솔직함’은 내 상황이나 내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 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비밀, 굳이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자기 이야기도 아니면서 제멋대로 솔직하다. 불편함을 표현하면 “그게 뭐 어때서? 사람이 솔직해야지.”라고 한다. 근데 재밌는 건 본인의 약점이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누군가 지적하면 몹시 불쾌해한다. 이런 땐 또 솔직한 자기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없다. 솔직하면 다 용서가 되고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함을 의사 표현 수단이 아닌 비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 해도 될 말을 솔직함을 핑계 삼아 한다. 물어보지 않은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듣고 싶지 않은 평가를 내린다. 이때의 의견이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건 솔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비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솔직’과는 거리가 멀다.
때론 솔직함을 자기방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솔직할 필요는 없는데 먼저 나서서 상대방이 몰라도 되는 것까지 털어놓는다. 마치 ‘난 이렇게까지 솔직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과하면 어느 땐 ‘그러니까 난 악의 같은 건 없는 사람이야.’ ‘난 정말 순수한 마음뿐이야’라고 힘주어 말하는 듯도 하다. 그럼 오히려 그 사람의 본심에 의심을 품게 된다. 김신회 작가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내 의심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다.
“... 그날 내가 가진 솔직함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집착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왜 다른 사람에게도 늘 솔직함을 강요하고 마는 걸까. 안 해도 될 말까지 꺼내며 나의 무해함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할까. 그동안 나는 솔직함을 무기로 사용해온 것은 아닐까. 나는 이렇게 솔직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솔직해지세요. 거짓말하지 말아주세요. 부디 상처 주지 마세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진심을 상대에게 퍼부으면서 나의 결백함, 무해함,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상대방도 나와 같기를 강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유키즈 온 더 블록>이란 TV 프로그램에 박준영 변호사가 나왔다. 박준영 변호사는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등의 재심을 맡아 억울한 피해자들의 무죄를 이끌어낸 걸로 유명하다. 재심 사건은 이길 확률도 적고,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아 많은 변호사들이 꺼린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재심 전문 변호사라고 하니 품은 큰 뜻과 남다른 사명감이 있겠다 싶어 주의 깊게 봤다. 보면 볼수록 난 박준영 변호사에게 빠져들었다. 박변호사의 큰 뜻과 남다른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솔직함 때문이었다. 남들은 다 기피하는 재심 사건을 맡은 이유에 대해 박변호사는 “그건 나에게 기회였다. 나는 절박함이 있었다. 알려지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하면 다른 돈 되는 사건도 많이 맡을 수 있고. 그래서 이 사건의 성과를 내는 게 절실했다.”라고 답했다. 그는 그렇게 시작은 했지만 하다 보니 사명감이 더해졌다고 했다. 이에 MC 유재석이 이런 얘기를 들으니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고 하자 박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첫 재심 사건이 5년 만에 해결되고 이젠 돈 되는 사건이 들어올 줄 알았다. 근데 예상 밖으로 억울한 사건이 계속 들어왔다. 이미지 관리도 필요할 때고, 그래서 하다 보니까 비슷한 사건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했다. 또, 재심 사건은 돈이 안 되는데 수입은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는 “현실적인 문제다. 애도 셋인데 아직 집이 없다. 주로 강연으로 먹고 산다. 근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난 원래 이미지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도 웬만하면 안 나오려고 하는데... 법률가가 예능 프로에 나오면 사람들이 그 시간에 사건 기록 검토 안 하고 TV 나온다고 해서 철저하게 이미지 관리하는 스타일이다. 근데...”라며 돈 때문에 나왔다는 뉘앙스를 비춰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박준영 변호사의 솔직함은 건강한 솔직함이었다. 어느 누구도 상처 받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본인을 포함한 주변 전체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건강한 솔직함이 성숙한 솔직함 아닐까. 그리고 어른이 갖추어야 할 솔직함이고. 뭐든 다 말하는 게 ‘솔직’은 아니다. “때론 솔직함도 잔인할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수치심, 분노, 두려움, 고통을 부르는 솔직함은 참된 ‘솔직함’이 아니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브레네 브라운이 한 말이다.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건강한 솔직함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