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만 생기면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 성과가 안 좋게 나오면 팀원 탓을 하거나 팀장이 평가를 제대로 못 해서 그런 거라 한다. 자기는 잘했는데. 구설에 오르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에 더 혈안이 된다.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게 그 사람 때문이라 생각한다. 배우자와 사이가 안 좋으면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 못 해줘서 그런 거라 한다. 자신은 다 이해했는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놓고는 상대방이 화나게 만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는 좋게 말하려고 했다면서. 심지어는 자신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전부 사회 구조가 이상해서 그런 거라고도 한다. 혼자 특별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랜 지인 하나는 결혼 전, 부모님이 고리타분하고 참견이 많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면서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보수적이라 사회생활하기가 힘들다며 남편 탓을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이가 엄마만 찾아 뭘 할 수가 없다면서 다시 아이 탓을 했다.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다른 집은 안 그런가?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를 안 찾나? 정말 부모님, 남편, 아이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 한 걸까?
이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뭐든 ‘누구 때문에’, ‘뭐 때문에’라고 하는데 그럼 본인에게는 그런 것들에 대응할 힘, 감당할 능력, 무시할 용기 같은 건 없다는 말인가? 그 정도에 휘청이고 꺾인다는 건 애초에 의지가 없었던 건 아닌가? 아님 자신만의 가치관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가? 본인은 타당한 이유라고 생각해서 격분하며 혹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다 핑계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뭐가 어찌 됐든, 누가 뭐라고 했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한 행동이다. 선택과 행동이 쌓여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거다.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린다는 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렌지를 짜면 언제나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뭔가가 우리를 쥐어짤 때, 그러니까 뭔가에 압박을 받을 때 나오는 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게 화든, 증오든 스트레스든 말입니다. 누가 우리를 쥐어짜는지, 언제 쥐어짜는지, 어떻게 쥐어짜는지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지요.” 웨인 다이어의 <인생의 태도>에 나오는 말이다. 팀장 탓, 배우자 탓, 부모 탓, 아이 탓, 상황과 시대 탓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래 자기 안에 갖고 있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나온 것뿐이고,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이 어쩌면 거기까지였는지도 모른다.
가끔은 본인은 정말 모르는 걸까 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느 강의에서 한 작가는 자신의 첫 책이 잘 안 된 걸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제목을 잘못 지은 거 같아요. 책은 괜찮았는데 제목이 영 별로였던 거 같아요.” 또 어느 신입 작가는 “우리 출판사는 너무 마케팅에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요. 마케팅만 잘했어도 더 많이 팔렸을 텐데.”라고 했다. 정말 책이 잘 안 팔린 게 제목 때문이고 출판사가 마케팅을 제대로 못한 탓일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난 아니라고 본다. 분명 어느 정도는 책이 별로였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자존심상, 혹은 용기가 없어 인정을 못할 뿐이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못되면 습관처럼 다른 데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얼마 전에 저녁 준비를 하는 데 아이가 와서 자꾸 말을 걸었다. 번잡하기도 하고 신경도 쓰여 좀 이따 얘기하자고 했는데도 계속 옆에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실수로 내가 그릇 하나를 떨어뜨렸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는데 그 순간 난 반사적으로 아이를 째려봤다. 아이는 당황하며 “난 아무것도 안 했어. 내 탓하지 마.”라고 했다. 사실 “저리 가 있으라니까”라며 막 아이 탓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이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행동이 평소 어땠길래 아이가 이런 말을 할까 싶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혹은 내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싶을 때 남 탓을 하게 된다. 때로는 남 탓도 모자라 상관도 없는 온갖 것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정신 가다듬고 잘 생각해보면 혹은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 웨인 다이어의 말이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내 안에 오렌지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오렌지가 나온 것뿐이다. 내 안에 이미 화가 있었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고, 실수할 여지가 있었던 거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인정을 안 했을 뿐이다. 남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봤으면 한다. 또,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발견했다면 비겁하게 핑계 대지 말고 깨끗하게 인정했으면 한다. 끝까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모습은 진짜 별로다. 가끔은 끝까지 우기면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고 해 주는 거라는 걸 왜 모르는 걸까. 특히 나이 먹어서까지도 그러면 많이 안쓰럽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기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늘 주변 상황과 남에게 휘둘리며 남 탓만 하고 있는 모습은 불편함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남 탓 먼저 하지 말고 내 탓부터 해봤으면 한다. 모든 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