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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Dec 08. 2020

인정은 받기보다 해주기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지인이라고 하기엔 가깝고 친구라고 하기엔 멀지만 편의상 친구라 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다. 보통 땐 잘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연락이 와서 보면 대체로 뭘 좋은 가격에 샀다거나, 반대로 뭘 좋은 가격에 팔았다거나, 좋은 곳으로 이직을 했다거나 아니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얘기다. 축하한다는 답장을 보내면 신이 나서 이런저런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낸다. 그러고는 뒤늦게 ‘별일 없지?’라며 내 안부를 묻는다. ‘없지’라고 답하면 ‘그래 그럼 잘 지내고’라는 말과 함께 대화는 끝이 난다. 대화를 마치고 나면 항상 궁금했다. 왜 연락한 거지? 용건이 뭐지? 나중에 이런 연락은 나만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야 알았다. 잘살고 있음을 알리는 것,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그의 용건이었다. 상대가 잘 지내는지 아닌지 따위는 사실 관심 밖의 일이다. 나에게 묻는 ‘별일 없지?’란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전에 회사 동료 한 명은 일을 아주 열심히 했다. 주변에서도 칭찬 일색이었다. 가끔은 너무 열심히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말을 즐겼다. 특히 상사가 “쉬엄쉬엄 해.”라고 하면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 말을 듣고 나면 왠지 더 열심히 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 그가 한 번은 승진에서 누락이 되었다. 사실 누락이라는 건 그의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는 승진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여기저기서 인정받고 있으니 남보다 빨리 승진할 거라 기대를 했던 모양이었다. 낙담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더니 한동안 눈에 띄게 일도 소홀히 했고 근무 태도도 좋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열심히 하긴 했지만 어쩐지 예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인정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인정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정을 바라는 건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라고 했다. 충족되지 않으면 문제도 일으킨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려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족했던 인정을 받으려 과하게 애쓰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나 역시 그랬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분명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길 간절히 원했고, 인정을 받으면 하루가 행복했고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 날은 일할 맛도 났다. 더 잘하자는 각오도 다졌다. 반면에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이렇게 계속 일해야 하나? 이 길이 맞나? 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형경 작가의 <만 가지 행동>을 읽던 중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대목을 하나 발견했다.     

 

“아마추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일을 한다. 아마추어가 타인과 경쟁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오직 자신과 경쟁한다. 아마추어가 끝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덤빈다면 프로페셔널은 언제든 그 일에서 물러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내면에서 느끼는 결핍감 유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난 아마추어였음을 깨달았다. 즐거워서 일했다기보다 인정받기 위해 일했고, 계속해서 남들과 경쟁했고, 늘 이거 아니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프로 아마추어였다. 김형경 작가는 자신도 글을 통해 권위를 가진 자로부터 인정과 지지를 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음을 깨닫고 나선, 자신을 타인에게 증명할 이유도, 누군가의 승인을 받을 필요도 없음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권위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점검되고 해체되자 현실에서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연장자 어른들에게 느껴 왔던 미묘한 어려움이 사라지고, 그들의 내면이 더 잘 보이는 듯했다. ... 그것은 참 편안한 경험이었고, 비로소 상징계라 불리는 영역에 들어서는 일이었고, 심리적 자립을 넘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경험이기도 했다.”        

  

인정은 어떤 면에서는 활기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동기 부여도 될 수 있다.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과도 좋아지고, 성과가 좋아지다 보면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도 한다. 문제는 인정이 최종 목표일 때다. 남들이 하는 잘했다는 말, 남들이 우러러보는 시선, 남들이 보내는 박수갈채, 남들이 주는 보상을 목표로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계속 의식하게 되고, 남들이 원하는 바, 남들이 좋다는 것, 남들이 말하는 최고를 쫓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생각은 없어지고 남의 생각만 남게 된다. 또 하나 문제는 그 ‘남’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람도 만족시키고 싶고, 저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고 싶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진다.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정받기에 빠지다 보면 불가능하다는 걸 잊은 채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인정은 단지 보너스 개념이어야 한다. 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할 수 없다는 정도로 생각해야지 인정을 연봉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종종 인정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여기고, 인정이 곧 자신이라 생각하거나, 어떡하든 더 많이 받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앞서 소개한 친구나 지인처럼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인정이 사라지면 의미도 잃는 일도 생긴다. 그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김형경 작가처럼 심리적 자립을 넘은 진정한 어른까지는 못 되더라도 인정에 의지하는 삶은 살지 말았으면 한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한다면 이젠 남에게서 인정받기를 바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아량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인정에 목매는 사람 치고 인정 잘해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남의 성공은 운이 좋았다 하고 자신의 성공은 노력이라 한다. 이것만큼 사람 작아 보이는 일도 없다. 인정받는 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인정하는 것에 더 힘썼으면 좋겠다. 그게 훨씬 더 어른스럽다.

© martzzl,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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