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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Dec 11. 2020

가르치기보다 배우기

스스로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이제 어른이야.”,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어른인데.” 또는 “어디 어른한테”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틈만 나면 가르친다. 아는 게 생기는 족족 가르치고 싶어 한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도 마치 자기 생각인 양 가르친다. 전생에 선생님이 되려다 꿈을 이루지 못한 건지. 묻지도 않은 걸 나서서 가르친다. 


막 상가 투자를 시작한 지인 한 명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았다. 투자가 좀 성공적이었는지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상가 얘기를 했다. 거리를 걷다가도 이런저런 아는 척을 했다. 저런 자리가 명당자리라거나, 저런 덴 투자하는 거 아니라거나. 하도 신이 나서 말하기도 하고 마침 나도 관련 책 몇 권 정도는 읽은 터라 일단은 관심 갖고 들었다. 근데 듣다 보니 점점 얘기가 단순한 아는 척을 넘어 지루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설명은 곧 설교로 넘어갔다. 심지어 중간중간 자기 말을 이해했는지 확인까지 했다. 더 이상 관심이 없어 대충 대답하니 큰일이라며,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고, 돈에 관심이 없어서 되겠냐며 설교는 더 장황해졌다. 사실 그가 하는 얘기는 책 한 권만 읽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고, 그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기초적인 이야기였다. 그만 모를 뿐. 그는 한동안 어딜 가나 상가를 비롯한 투자 얘기에 열을 올렸고, 마치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듯 열심히 사람들을 가르쳤다. 


한 선배가 있었다. 그는 나를 비롯한 후배들을 보면 그렇게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 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느니, 살아 보니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다느니.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글쎄요’라고 했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이야’라고 할 때는 소름이 돋는 줄 알았다. 선배라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나보다 서너 살 정도 위인 그가 살았으면 얼마나 살았다고, 또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그것도 인생에 대해서. 


가르치려는 습성은 꼭 나이 먹은 어른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회사에서 막내 밑으로 새로운 막내가 들어오면 예전 막내는 새 막내를 신이 나서 가르친다. 업무만 알려주면 될 것을 회사 생활 전반에 걸친 조언도 아낌없이 준다. 뭐 거기까지는 애교로 봐준다. 얼마나 좋고 신기하겠나. 처음으로 자기 밑에 후배가 생겼는데. 근데 가끔 “이런 게 사회야.”라며 꽤나 큰 어른인 척 삶의 태도까지 가르치려 들 때가 있다. 오버다 싶다. 보고 있으면 ‘저나 잘 것이지. 누가 누굴 가르쳐.’란 생각이 절로 든다.

© mohamed_hassan, 출처 Pixabay


어른들은 왜 그렇게 가르치는 걸 좋아할까? 왜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부터도 그렇다. 아이가 얼마 전 3D 프린터로 집을 짓는 영상을 보여주며 좀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런 게 일반화되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겠다며 직업에 대해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혼자서 그런 생각을 다하고. 같이 신기해하고, 공감해 준 걸로 끝냈어도 될 걸 난 굳이 몇 마디를 더 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사람이 미래도 내다볼 줄 알아야 하고. 시대 변화도 빨리 캐치해야 하는 거야. 그러려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말했다. “응!” 왜 그랬을까, 뒤늦은 후회를 했다. 기껏 자기 의견을 내놓은 아이에게. 그 얘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그만 가르치자.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은 버리자. 큰 착각이다. 내가 아는 정도는 남들도 다 알고 있다. 혹시 모르고 있더라도 살다 보면 곧 알 것들이다. 그리고 몰라도 사는 데 크게 지장 없다. 그거 모른다고 그 사람 인생 어떻게 되지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가끔은 하도 가르쳐서 다 알고 있다고 하면 아는 사람이 그러냐며 다시 가르치려는 사람도 있다. 뭔가를 안 할 때는 몰라서 안 하는 것보다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실천할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굳이 다시 가르치려 들지 말자. 내가 가르치면 다를 거라 생각하는가? 무슨 근거로? 뭔가를 배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싶어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무데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진 않는다.  


또, 나이가 나보다 어리면 생각도 어릴 거라는 생각도 버리자. 생각과 경험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평탄하고 부유하게만 살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 많은 어른을 많이 봤다. 이야기 나누다 보면 오히려 내가 뭐라도 좀 알려 줘야만 할 것 같다.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데도 어쩜 나보다 생각이 더 깊은지.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 느끼는 것들을 벌써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난 뭐하고 살았나 싶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르치기는커녕 배워도 한참 배워야 할 것 같다. 


누군가를 가르칠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뭐라도 더 배우자. 책을 읽든, 좋은 강의를 찾아 듣든, 매번 만나는 사람들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듣자. 


“최고가 되고 싶다면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나이가 21살이건 51살이건 101살이건 상관없이, 뛰어난 사람이 결국은 이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뛰어난 사람은 모두 독서광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스스로 어른이라 생각한다면 나이가 21살이건 51살이건 101살이건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데 힘써야 한다. 본인은 더 이상 배우지도 않으면서 남 가르칠 생각만 하면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배운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그걸 가르쳐줄 생각이었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아니라면 가르치는 건 좀 그만하자. 그만 가르치고 나나 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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