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임이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모임이었는데 만날 때마다 대화 내용은 비슷했다. 경기가 안 좋다, 집값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냐, 점점 돈 있는 사람은 더 잘살고 돈 없는 사람은 더 못산다, 이게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렇다. 계속 듣다 보니 이게 다 정부만의 탓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한 현상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 번은 그런 뉘앙스를 살짝 비췄는데 열을 내며 반발했다.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정부만 제대로 했어도 지금처럼은 안 됐다 등등. 난 한마디 했을 뿐인데 몇 배의 말이 돌아왔다. 게다가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주변에서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본다. 인터넷 댓글만 봐도 그렇다. 한 가지 사건을 두고도 반응이 양쪽으로 갈린다. 어떻게 이렇게 보는 각도가 다를까 싶다. 양쪽 모두 다른 쪽이 주장하거나 강조하는 바는 전부 틀렸거나 별것 아닌 걸로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만 맞다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 어떤 것도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에 유리하게 해석한다. 불리하다 싶은 건 아예 모른 척을 하기도 한다.
사업하면 집안 다 말아먹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식하면 재산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는 사람도 있다. 성공하려면 학교 공부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겐 다른 의견이 들어갈 틈이 없다. 늘 망하고 잘못된 예를 들며 자신의 생각이 맞다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예로 들어도 그건 그저 운이 좋아서 그런 것뿐이라 한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본인만의 확고한 신념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 신념은 경험에서 나오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 생기기도 한다. 한 번 자리 잡은 신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쪽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본인 생각과 다른 얘기는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알 필요도 없다 생각한다. 그러니 논리적인 주장 대신 막무가내식 우기기에 더 가깝다. 무조건 아니라고 하거나, 반대로 무조건 맞다고 한다. 가끔은 논리적일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에 유리한 것들만 골라 예로 든다. 언뜻 들으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뒤돌아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허점들이 있다.
“우리가 무시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보들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열린 사람이 되자. 그래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정재윤의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에 나온 말이다. 청소년을 위한 심리 교과서라는데 어른들이 먼저 봐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은 좀처럼 자신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금은 어이없지만 스스로 꽤 판단력이 있다 생각한다. 더불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만큼 안다 생각한다. 새로운 정보나 새로운 생각을 접해도 본인 생각과 맞지 않으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은 점점 닫히고 시야는 더 좁아진다. 당연히 삶의 방식이 한정된다.
<고수의 독서법을 말하다>에서 저가 한근태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한 권의 책만을 읽고 그 주장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자기 종교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그건 제대로 된 종교 행위가 아니다. 내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종교만큼 다른 종교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한다. ... 제대로 좌파활동을 하려면 우파의 책을 읽어야 하고 우파 역시 좌파의 글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내 말은 맞고 다른 건 다 틀렸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일어나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지 않나. 나이 들수록 신념처럼 갖고 있는 내 생각도 한 번씩은 돌아봐야 한다. 올바른 신념인지, 이 신념에 갇혀 미처 못 보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 신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