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의 다짐, 8시간의 거리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시간은 12시간. 12시간 동안 영화를 여러 편 보며, 내가 회피하고 미뤄두었던 현실을 정리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한편으론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렵기도 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회사를 왜 그만두냐", "아직 대학 졸업장도 없어서 이직하기 어려울 거다", "뭐 먹고 살려고 그러냐" 등 걱정과 애정이 담긴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 이력으로 이직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은, 회사는 단순히 회사일 뿐 내 인생을 보호하거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기 계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거구나'라고 느꼈다.
미국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위해 에이전시에 입금을 하고 떠난 파리였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대학도 휴학해야 하고, 미국 워홀 준비도 해야 했다. 회사를 쉬면 수입이 없을 예정이니 한 달 가계부도 다시 짜야 했다.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오랫동안 무기 하나 없이 사막 같은 사회에서 버텨온 나를 위해 한두 달은 쉬기로 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파리 여행이었지만,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탓인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반갑지는 않았다.
한국에 도착했다. 출발 전, 부모님께 몸이 안 좋다고 미리 연락을 드리며 공항으로 마중 나와 달라는 반강요의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이미 와 계셨다. 아빠는 매번 태워다 주고 데리러 온다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팠으니까! 그런데 억울했다. 분명 파리 공항에서는 심각한 얼굴이었는데, 한국에 오니 거의 멀쩡한 상태가 되어버렸고, 결국 "꾀병 아니냐"는 잔소리를 들었다. 12시간 만에 회복된 얼굴이 원망스러웠다.
집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며 역시 집이 최고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금요일에 도착했기에 주말 동안 쉴 수 있었지만, 아직 회사에 3일 정도 더 나가야 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대명이와 연락을 끊으리라 다짐했는데, 대명이는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 답장을 늦게 보내도 언제나 메시지가 와 있었고, 여전히 파리에 있는 대명이는 그곳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대명이가 주었던 부담감보다 파리에 대한 친근함이 더 크게 느껴졌고, 벌써 한국에 와버렸다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대명이와 나는 하루 만났을 뿐이었지만 친구가 되었고, 서로 해외여행을 좋아하고 같은 대학생이라는 공통점 덕분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던 '연락을 끊겠다'는 결심은 어느새 흐려졌다. 대명이는 말 자체가 유머러스한 사람이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유쾌했다.
나는 한국에서 첫 회사의 마지막 3일을 보냈다. 마지막 날 아침, 후임에게 간단한 편지와 작은 선물을 준비해 전달했다. 함께 일할 시간이 더 길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그 친구가 잘 나아가길 바라며 내 첫 회사 생활의 막을 내렸다. 내 20대 초반을 다 여기에 보낸 것 같아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했다. 대명이는 그동안 고생했다며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하더라도 잘할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었고, 그 위로가 따뜻하게 느껴져 고마웠다.
나는 오랫동안 계획해둔 일본 가족 여행을 떠났다. 대명이는 파리가 아닌 다른 유럽 나라로 이동했다. 일본 여행 중이던 어느 날, 대명이가 유럽에서 기차를 타다가 표가 잘못되어 문제가 생겼다. 그때가 일본 시간 새벽 2시였다. 그쪽에서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검색이 어려웠고, 카카오톡만 겨우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새벽에 노트북을 켜서 기차 관련 정보를 찾아주었다. 스스로도 참 오지랖이 넓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족들과 함께한 일본 여행은 '효도 여행'이라는 이름이 딱 맞았다. 파리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키나와에 오게 되었는데, 잔잔한 도시였음에도 몸은 피곤했다. 그래도 가족들은 행복해 보였다. 대명이는 여전히 유럽 곳곳을 다니며 예쁜 사진을 보내주었고, 나도 오키나와의 풍경을 공유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여행하며 사진을 주고받는 게 신기했다. 짧은 3박 4일의 일본 여행이 끝나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면 대명이가 유럽에서 귀국하는 날이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만나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고, 우리는 서로 사는 곳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레짐작이지만, 대명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명이는 내가 파리를 떠난 후에도 유럽 여행을 다니며 거리 풍경, 음식 사진 등을 보내주었고, 덕분에 나는 마치 여전히 유럽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차가 8시간이나 났지만, 연락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처음엔 그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몇 주간의 연락이 어느새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즐거웠다. 사실 그때 나도 이미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기다렸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드디어 내일이면 대명이와 한국에서 만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