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일

마음의 거리

by 오기우기


마지막 밤을 우여곡절 끝에 보내고, 드디어 출국일이 되었다. 정말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눈이 쉽게 떠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거웠던 눈꺼풀이 오늘은 가벼운 느낌이었다. ‘싹 다 나았나? 내가 너무 걱정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보니 6시 50분. 아직은 여유로운 시간이다.

어젯밤 9시에 나가 공항버스를 타기로 했었다. 공항버스는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 비행기는 몇 시인지 하나둘 떠올리던 중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가 보였다. 친구는 깊이 잠들지 못한 듯했다.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퍼져 있었고, 그런 친구의 얼굴을 보니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친구가 더 잘 수 있도록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봤다.


눈꺼풀은 어제보다 가벼워졌지만, 거울 속 내 얼굴은 충격적이었다. 어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아 실감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얼굴은 평소보다 세 배는 커져 있었고, 눈은 마치 뒷골목에서 누군가에게 맞은 듯 부어올랐다. 아니면 하루 종일 울기만 한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그래도 힘들게 구한 알레르기 약 덕분에 깊이 잠들었고, 쉰 목소리도, 숨 쉬는 것도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검색해 보니 알레르기 증상과 매우 흡사했다. 아마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울 속 내 모습이 여권 사진 속 얼굴과 너무 달라서 ‘출국할 때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워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분명 황당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보다 보니 멍청하게 부은 내 얼굴이 정감 가고 웃기기도 했다. 한국에 가면 알레르기 검사를 꼭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늘 일정은 단순했다. 오후 2시 비행기를 타면 된다. 하지만 마지막 밤을 빗속에서 약국 찾아 삼만리를 한 게 못내 아쉬웠다. 8박 9일 동안 느긋하게 파리에서 파리지앵인 척하며 보냈던 여행도 끝이 났다. 이제 짐을 싸서 퇴실해야 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쌓여 있는 메시지가 많았지만, 우선순위는 내 얼굴이었다. 짐을 싸면서도 고민했다. 이 얼굴로 공항에 가는 게 너무 창피했다. 얼굴이 고르게 부은 것도 아니고, 군데군데 부어 있어 마치 호두과자처럼 생겼다. 처음엔 충격받았지만, 보다 보니 그냥 웃겼다. 언제 또 이런 얼굴을 해보겠어. 하지만 ‘이건 꿈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건 내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샤워 후 밀린 메시지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대명이가 아픈 나를 위해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거기에 새벽의 에펠탑 사진과 함께. ‘얘는 미친 걸까? 이게 무슨 상황이지?’ 황당했다. 대명이는 우리 숙소가 어딘지 모른다. 단지 에펠탑을 보러 가는 길에 이 근처가 숙소라고 알려줬을 뿐인데, 그 정보만으로 이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니. 심지어 대명이의 숙소에서 파리 시내까지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7시에 파리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결국 해석해보면, 그는 새벽부터 파리 시내로 와 몇 시간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때의 시간은 8시 20분이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정말 부담스러웠다. 내 얼굴을 절대 보여줄 수도 없고, 굳이 자신의 유럽 여행 일정 중 하루 만난 친구를 위해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대명이와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고 싶었는데, 갑자기 경계심이 들었다.

“대명아, 마음만 받을게. 정말 고맙지만 우리끼리 갈 수 있어서 괜찮아. 유럽 여행 잘해!”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후, 답장이 왔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래, 내가 직접 공항에 데려다 줄게"

나는 이 상황을 친구에게 말했고, 친구와 나는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황당함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제 자기 전, 내가 남긴 메시지에서 ‘알레르기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문제였을까? 대명이는 본인도 알레르기를 겪어봐서 그 힘듦을 잘 안다며 구구절절 도와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정말 부담스러웠다.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나와 친구는 조용히 숙소를 나와 공항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공항버스에 탑승했다고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 좋은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나의 생각이 틀렸다. 아무래도 이 친구와의 관계는 파리에서의 추억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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