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약국

낯선이들의 온기

by 오기우기

구글 지도를 따라 찾아간 약국은 문이 닫혀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거센 소나기가 쏟아졌다. 하루 종일 쨍쨍했던 날씨였기에 우산은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 약국 앞에서 당황한 친구는 급히 휴대폰을 꺼내 '파리 24시간 약국'을 검색했다. 가까운 약국을 찾자마자 우리는 우버를 호출했다.

나는 시야가 흐릿했다. 빗방울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인지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숨쉬기도 버거웠다. 살면서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수없이 다녔던 해외여행에서도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친구의 손을 잡고 겨우 움직였다. 빗속의 파리 거리, 젖은 돌바닥 위를 걷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낯선 도시의 불빛이 번져 흐릿하게 보였다.

우리는 비에 흠뻑 젖은 채 택시에 올라탔다. 차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 너머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일렁였다. 택시 기사는 아무 말 없이 운전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불안으로 다가왔다. 여행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부은 눈 탓에 구글 지도도 볼 수 없었고, 내 증상을 검색해볼 수도 없었다.


마침내 두 번째 약국에 도착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친구는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비싼 병원비가 걱정되었다. "조금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 곧 한국에 돌아가니까." 그렇게 병원은 포기했다.

그러나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가보자." 우리는 또다시 비를 맞으며 우버를 불렀다. 나도 고집이 센 편이지만, 이 친구도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 고집이 나를 위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친구는 내 손을 꼭 잡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라고 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가슴이 조여들 듯했고, 공기가 폐 끝까지 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 지금 어때?" 쉰 목소리로 묻자, 친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답했다. "얼굴이 세 배는 부었어. 눈이 거의 안 보여."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이제는 무서웠다. 정말 무서웠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유람선 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세 번째 약국에 도착했다.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역시나..." 실망이 밀려오려는 찰나, 친구가 말했다. "여기 벨이 있어!" 친구는 벨을 여러 번 눌렀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만하자. 그냥 숙소로 가자. 괜찮아질 수도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러나 친구는 대답하지 않고 더 세게 벨을 눌렀다. 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고, 차라리 한국에서 아팠다면 응급실이라도 쉽게 갈 수 있었을 텐데, 여행 중 아픈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때, 한 외국인 커플이 다가왔다. 그들은 프랑스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친구가 당황하자 곧 영어로 말을 바꿨다. 친구는 서툰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내 상태를 설명했다. 커플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당황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친구가 눌렀을 때는 아무 반응이 없던 벨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커플이 다시 누르자 약사가 인터폰을 통해 응답했다. 커플은 약사와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잠시 후 졸린 눈으로 안경을 쓴 약사가 가디건을 두른 채 나왔다. 약사는 프랑스어로 물었고, 커플은 끝까지 통역을 도와주었다. "알레르기인가요?" 약사가 묻자, 친구는 "그럴 수도 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커플은 지치지 않고 계속 통역을 해 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약사는 간단한 약을 건네며 복용 방법을 설명했다. 친구는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드디어 약을 구했다. 우리는 커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택시에 올랐다. 친구가 물과 약을 건네주었고, 나는 약을 삼켰다. 그러나 숨쉬기가 여전히 어려웠다. 창밖으로 젖은 파리의 야경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빗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차가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닿자 몸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눈이 조금 더 떠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는 "빨리 누워서 쉬어."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아파서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친구는 한숨을 쉬었지만, 그 한숨은 안도의 한숨 같았다. 약을 먹고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씩 눈이 떠졌고, 핸드폰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대명에게서 수십 통의 메시지가 와 있다는 걸 확인했다. 대명을 배웅한 이후로 꾸준히 메시지를 보냈던 것 같았다. "버스 탔어?"라는 메시지 등이 있었지만, 나는 간단히 "몸이 좀 안 좋아."라고 답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어디가 아픈 거야? 비는 안 맞았어? 지금 괜찮아?" 걱정이 가득한 메시지였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대명은 심성이 착한 친구였지만, 그의 걱정은 지나칠 정도였다.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지친 몸과 마음에 더 이상 답장을 할 힘이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알레르기 일지도 몰라, 알레르기 증상이 있었어"라는 답장과 함께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이때는 내일 아침에 벌어질 황당한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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