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 언덕에서
파리 여행을 하는 8박 9일 동안 우리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가까운 거리의 여행지도 아니고, 각 장소마다 이동 시간이 꽤 걸리는 터라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숙소는 좁았지만 나름대로 신기한 구조였다. 소파 겸 침대가 있어서 침대를 들어 올리면 벽에 붙고, 그 자리엔 자연스럽게 소파가 나타났다. 단순히 씻고 잠만 자는 용도로는 충분했지만, 8박 9일 동안 평균 수면시간이 4~7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번도 늦잠을 잔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처음으로 늦잠을 자 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의 피로가 쌓였지만,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예정보다 늦게 숙소를 나서면서 오늘의 일정은 몽마르트 언덕에서 시작됐다. 마지막 동행자를 만나기 위해 우버를 타고 이동한 뒤, 근처 빵집에서 커피와 빵을 샀다. 하지만 문제는 언덕이었다. 왜 하필 만나는 장소를 몽마르트 언덕으로 정했을까? 수많은 계단을 앞에 두고 우리는 멍하니 서 있었다.
최대한 택시로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우리는 헉헉대며 계단을 한 칸 한 칸 힘겹게 올라갔다. 핸드폰을 보니 벌써 9시 16분. 약속 시간인 9시보다 이미 늦어 있었다. 유럽은 계단이 좁고 많다. 아무리 걸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간신히 언덕 정상에 도착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침 9시 20분의 몽마르트가 이렇게 한산할 줄이야.
"저희 도착했는데 어디세요!?"
쪽지를 보내고 숨을 고르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딘가 어색한 움직임을 보이는 한국인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나는 원래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는 쪽지에서 보인 말투와는 다르게 극도로 낯을 가리는 듯했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커피와 빵을 건넸다. 안보이셔서 쪽지를 보냈는데 어디 계셨어요? 라고 여쭤보니 저 멀리서부터 우리가 언덕을 오르는 걸 보고 있었고 민망해서 숨어있었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특이한 분이네.'
첫인상은 누가 봐도 전형적인 대학교 공대생 느낌. 곱슬머리에 안경, 베이지색 반팔티에 검은색 슬랙스, 흰색 운동화까지. 그리고 확실히 내향적인 성격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장난을 치며 자연스럽게 말을 놓자고 했고, 그렇게 우리 셋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인 만큼 우리는 후회 없이 구경하고, 사진도 많이 남기기로 했다. 동행의 장점은 역시 사진! 친구와 나의 투샷을 많이 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전 일정으로는 몽마르트 언덕, 사랑해 벽,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을 돌기로 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은 사람이 많아서 관람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다양한 작품을 보면서, 과거에 들었던 서양미술사 수업이 떠올랐다. 그때 더 열심히 공부해둘걸, 하는 가벼운 후회도 스쳤다.
오전 일정을 마친 후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밥을 먹으며 서로 찍어준 사진을 교환했고, 자연스럽게 번호도 주고받았다.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공유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김대명이라는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예상과 달리 꽤 유머러스했고, 말도 잘하는 친구였다. 이미 유럽 여행을 2주 넘게 하셨던 분이었고 그 외에도 대화를 통해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오후 일정을 다시 체크하며, 저녁엔 세느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미리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다만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가 고민이었다. 그러다 빅뱅의 지드래곤이 다녀갔다는 유명한 우동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저녁은 거기서 먹기로 했다. 점심에 에스까르고와 양파수프를 먹고 오랑주리 미술관도 가고 세느강도 걸었다. 생트 샤펠 성당도 갔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갔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가 난 이후라 화재의 현장을 눈으로 볼 수 있었고 마음이 아팠다. 우동집으로 걸어가면서 메뉴를 정했다. 새우튀김우동이 유명하다고 해서 나는 새우튀김우동을 먹기로 했는데 대명이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어 일반 우동을 먹겠다고 했다.
"새우튀김우동이 유명한데, 새우를 못먹는다고? 그럼 다른 곳으로 가자"
다른 곳으로 바꿔볼까 싶었는데 대명이는 그곳이 좋겠다며 예정대로 우동을 먹자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여행의 마무리가 순조로울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