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먹고 생긴 일
퇴사 기념으로 떠난 파리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은 비록 늦잠을 잤지만 순조로웠다. 유럽의 공기, 다양한 건축물,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까지 모든 것이 너무 멋졌다. 파리의 세느강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데, 왜 이렇게 낭만적으로 느껴질까?
이른 저녁이었지만 세느강 야경 유람선 투어를 타려면 서둘러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나와 친구, 대명이는 우동집으로 향했다. "여기가 지드래곤이 왔던 우동집 맞지?" 어릴 적 '빅뱅'의 인기는 대단했다. 새우튀김우동 2개와 일반 우동 1개를 주문했다. 우동이라 그런지 금방 나왔다. 새우튀김우동에는 커다란 새우 두 마리가 올라가 있었다. 유럽에서 먹는 일식이라니, 괜스레 웃음이 났다. 파리에서 먹는 첫 우동이었다. 새우튀김이 올라가 있으니 맛이 없을 리는 없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동은 아니었다. 대명이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어서 일반 우동을 먹었는데, 평범한 맛이라고 했다. 이렇게 맛있는 새우를 못 먹는다니 살짝 동정심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 해외여행을 가면 새우만 먹으러 다닐 정도로 새우를 좋아하니까. 동정심은 잠시 접어두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세느강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파리는 치안이 썩 좋지는 않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다. 세느강 유람선을 밤에 타면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기에 기대감이 컸다. 유람선을 타고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얼마나 낭만적일까? 유럽 여행 내내 하루에 몇만 보씩 걸으며 발이 아팠는데, 오늘 밤만큼은 정말 편한 여행이었다.
유람선에 탑승했다. 밝았던 해가 서서히 사라지며 달이 떠올랐다. 우리는 천장이 없는 꼭대기 층에 자리를 잡았다. 연한 파란색이었던 하늘이 점점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건물들은 저마다의 위치를 강조하듯 노란빛과 주황빛의 불을 밝혔다. 파리의 날씨는 40도를 넘는 강렬한 햇빛으로 가득했지만, 세느강 위에서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너무 더워 힘들기도 했지만, 친구와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파리 여행이었다. 우연히 만난 마지막 동행자 대명이는 내향적이지만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이었다. 좋은 학교 친구를 새로 사귄 것 같아 기뻤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자꾸 휘날렸다. 간지러워서 그런지,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몸을 여러 번 긁었는데, 장난기 많은 대명이는 "씻고 다녀라"며 나를 놀렸다. 좋은 학교 친구라는 말은 취소, 장난기 많은 친구로 정정해야겠다. 유람선을 타고 본 마지막 에펠탑은 역시 아름다웠다. 에펠탑은 멀리서 보아야 더 웅장하고 멋지다. 에펠탑이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었고, 우리도 많은 사진을 남겼다.
유람선에서 내려 사진을 공유한 후 각자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파리 중심지에 있어 멀지 않았지만, 대명의 숙소는 다소 먼 곳에 있었다. 대명이를 배웅하고 우리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걷던 중 슈퍼가 보여 친구가 물을 사러 들어갔다. 나는 슈퍼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눈이 간지러워 손으로 몇 번을 비볐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고 기운이 빠졌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인가 보다' 싶었다. 친구가 물을 사 나왔고 우리는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쪽 눈이 계속 간지러웠다. "나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 거울 있어?" 친구에게 거울을 요청했다. 친구가 거울을 주며 나를 쳐다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너 눈이 왜 이래?" 나는 "눈이 자꾸 간지러워서 뭐가 들어갔나 봐"라고 대답했지만, 친구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는 나를 이끌고 비를 피할 곳으로 옮겼다. 이윽고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몸이 간지러운 것보다 숨쉬기 어려운 것이 더 괴로웠다. 친구는 내 상태를 보고 급히 우버를 불러 가까운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렸지만, 나는 눈이 보이지 않아 거의 친구의 손에 의지해야 했다. 택시는 이미 저만치 사라졌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약국의 문은 차갑게 잠겨 있었다. 마치 세상이 우리를 외면한 듯, 어둠과 고요 속에서 절박함이 숨통을 옥죄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