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살짝 요동쳤다.
보경이 탈출 사건의 충격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았다. 다시는 그날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는 임보는 하지 않겠다고. 그래도 자주는 못 가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봉사를 가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이면 보호소로 향했다.
보경이를 보호소에 돌려보낸 이후에도, 봉사를 갈 때면 자연스럽게 보경이와 시간을 보내게 됐다. 심장사상충을 앓고 있던 보경이는 하루 두 번, 30분 정도만 산책이 가능했다. 짧은 산책으로는 쌓인 에너지를 풀기엔 부족했을 것이다.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보호소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보경이는 산책을 거부하거나, 다른 강아지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보호소는 보경이를 위해 꾸준히 임보처를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몇 차례의 큰 다툼과 피를 보는 일까지 겪은 뒤에야, 한 봉사자의 집으로 임보를 가게 되었다.
보경이가 떠난 보호소는 어딘가 허전했다. 보고 싶고, 걱정되었다.
혹시 또 탈출하진 않을까? 낯선 환경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을까? 아직도 집 안 물건을 물어뜯거나 짖고 있진 않을까?
그 걱정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보호소의 하루하루는 늘 분주했다. 안락사 직전 구조된 강아지들, 2년 넘게 임보를 갔다가 돌아온 아이, 해외 입양을 앞둔 강아지, 병원 치료를 기다리는 아이들까지. 예방접종, 중성화 수술, 싸움으로 인한 부상 치료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전부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보호소였다.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별도로 이동 봉사자를 구해야 했고, 그 체계적인 시스템이 늘 인상 깊었다. 약 300명의 봉사자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활동하며, 봉사 후엔 산책일지나 강아지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도 활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체 채팅방에 새로운 강아지의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속 강아지는 황금빛 털을 가진,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아이였다. 진도 믹스 같기도 하고, 시바 믹스 같기도 했다. 이름은 '시온'.
인스타그램 보호소 계정을 열어보니 #공고번호25_0007로 등록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짝꿍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강아지 어때? 새로운 강아지인데, 시온이래." "응. 귀엽네."
짝꿍의 반응은 그저 심드렁했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냥, 새로 온 귀여운 강아지를 직접 보면 어떨까 하는 설렘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몇 번의 봉사에서도 시온이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보호소는 2층과 3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시온이는 예민하거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아이들이 머무는 3층에 있었다. 일반 봉사자는 쉽게 올라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시온은 점점 더 궁금한 존재가 되어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2025년 3월 25일 오전 10시 35분.
보경이가 임보처로 떠난 후, 나는 주로 '순돌이'와 산책을 다녔다. #공고번호25_0016. 목줄을 한 채 떠돌다 구조된 아이였다. 18.8kg의 노란빛 털과 순한 눈망울을 가진 순돌이는 이름처럼 정말 순했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산책을 마친 뒤, 강아지들이 옥상에서 뛰놀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봉사자들이 한 마리씩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왔고,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순간— 어느 봉사자님이 시온이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왔다.
시온이는 낯선 공간이 불편한 듯, 문 앞 구석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꼬리를 잔뜩 내린 채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짖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기라도 한 듯 존재감을 지운 모습이었다.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바닥을 펼쳐 냄새를 맡게 했다.
"시온아, 안녕."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내밀고,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시온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듯, 그저 묵묵히 내 손길을 받아주었다. 반가움도 경계도 아닌,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다른 강아지들이 신나게 뛰노는 옥상에서, 시온이는 가장 조용하고 낯선 존재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쩐지 짠하기도 했다.
나는 몇 장의 사진을 찍어 짝꿍에게 보냈다. 짝꿍은 시바견을 좋아하니까. 혹시 이 아이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하며.
그때, 옆에 있던 봉사자 한 분이 조용히 말했다. "이 강아지… 보호소에 잘 적응 못해요. 심장사상충도 있고, 바베시아도 있거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단단히 걸어잠갔던 내 마음이 아주 조용히, 살짝 흔들렸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돌봐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함께 살고 있는 짝꿍과 충분히 상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날의 만남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내 마음에 남았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엔 온통 시온이 생각뿐이었다.
사람 일은 정말 언제, 어디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 말이, 그날따라 유난히 마음 깊이 박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