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시온이와 첫 산책

30분의 산책, 그리고 3일 후

by 오기우기

시온이를 처음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잔잔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시온이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뭔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전해지는 듯한, 묵직한 눈빛이었다.

자꾸만 그 아이가 떠올라 인스타그램에서 ‘#공고번호25_007’을 검색했다. 구조 당시의 모습부터 좁디좁은 철창 안에 웅크리고 있던 사진들까지…. 그 속에 담긴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앓고 있는 병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내가 데려와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보경이 탈출 사건이 떠올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땐 시온이랑 산책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꾹 눌러두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흘러도 시온이에 대한 마음은 흐려지지 않았다. SNS에 올라오는 시온이의 근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고, 애써 닫아두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듯했다. 며칠, 아니 몇 주를 고민한 끝에 결국 짝꿍에게 말을 꺼냈다. 사진 속 시온이를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강아지, 보호소에서 잘 적응 못하는 것 같아. 너무 순하고... 우리가 2주만 임보하는 건 어때?”

짝꿍은 잠시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곤 이내 “너가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책임의 무게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막상 허락을 받고 나니 이상하게도 겁이 났다. ‘이렇게 쉽게 승낙을 받아도 되는 걸까?’ 데려왔다가 또 탈출하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계속 짖는 건 아닐까.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오히려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결국 임보 신청은 다시 미뤄졌다.


2025년 4월 8일 오전 7시 30분

이날도 어김없이 산책 봉사에 참여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산책 명단을 살펴보다가,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시온이...!’ 아직 산책을 나가지 못한 아이들 중에 시온이가 있었다. 심장이 살짝 빨라진 채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오늘 시온이랑 산책해봐도 될까요?”

“네, 3층에 가서 아이 데리고 오시면 돼요.”

보호소 관계자의 말에 설렘이 온몸으로 퍼졌다. 3층으로 올라가자, 펜스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온이가 보였다. 말려 올라간 꼬리를 흔들며, 마치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안녕, 시온아!”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더욱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하네스를 채우고 조심스럽게 건물을 나섰다. 시온이는 긴 산책이 어려운 아이라 주로 보호소 근처 뒷산을 오간다. 이미 익숙한 길인 듯, 조심스럽게 나를 이끌며 걷기 시작했다. 산책 천재였다. 내가 멈추면 같이 멈추고, 내가 움직이면 발맞춰 움직였다. 힘껏 끌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나와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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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내내 시온이는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간 얼굴, 반짝이는 눈빛. 그 표정 하나에 괜히 울컥했다.

‘이렇게나 예쁜 아이를…’
3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 시온이의 발걸음은 여전히 경쾌했지만 나의 발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이러면 안 돼. 책임질 수 없는 감정은 갖지 말자.’
스스로를 타이르며 체면을 걸었지만, 이미 마음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그날의 봉사는 이상했다.

산책을 마치고 청소, 물갈이, 사료 챙기기, 약 먹이기 등을 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았다. 이상하게 조용했고, 무언가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땐 누구도 몰랐다.


2025년 4월 11일 오후 1시 30분

이날은 재택근무 중이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던 중, 무심코 봉사자 단톡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공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보호소 2층과 3층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어서 올라온 안내문. “음성인 강아지들을 우선 대피시키고자 일주일간 단기 임보처를 급하게 구합니다.”

명단을 확인하자, 거기엔 시온이의 이름도 있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지금이야. 지금이 기회야.’

글이 올라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시온이 일주일 단기 임보 희망합니다.”

10분 후, 답장이 도착했다.
“혹시 언제쯤 오실 수 있나요?”
숨을 크게 들이쉬며 곧장 답했다.
“빠르면 3시에도 갈 수 있어요. 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코로나는 잠복기가 있을 수 있으니 병원에서 검사 후 이동해달라는 안내를 받았다.
“물론이죠. 그렇게 할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짝꿍에게 연락했다.
“보호소에 코로나가 돌아서 안 걸린 시온이만이라도 대피시켜야 한대. 내가 임보 신청했고, 곧 데려올 거야.”
“그래. 알겠어.”
그 말 한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보호소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적막한 분위기였다.

책상 위엔 강아지들의 검사 결과지와 키트들이 펼쳐져 있었고, 시온이는 낯선 2층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30마리가 넘는 강아지 중, 대부분이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한 달도 안 된 새끼 강아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안에서 시온이는 마지막 검사에서 희미한 두 줄이 나왔고, 검사를 다시 받고 자택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일주일간 먹을 사료, 바베시아와 심장사상충 약 복용 방법, 각종 주의사항을 꼼꼼히 듣고 시온이와 함께 보호소를 나섰다.

조심스레 안아 든 시온이는 말없이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나는 그의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 아이의 시간에, 내가 조심스럽게 스며들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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