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다정했던 첫 4일
보경이를 떠나보낸 후, 다시는 임보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또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갈색 털, 조용한 눈빛,
손끝에 닿았던 따뜻한 체온.
그게 시온이였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남기고 싶었다.
하루하루, 더 가까이.
그래서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온이와 함께한 첫 4일,
낯설었지만 참 다정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사람도 낯선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것이 불편하듯, 강아지도 그럴 거란 생각에 걱정이 됐다.
짝꿍은 강아지를 임보하는 건 괜찮다고 했지만, 단 한 가지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게 있었다.
바로, 침대에 함께 자는 것.
신발을 신고 침대에 올라오는 것과 같다고 느껴진다며, 이 부분만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나도 그 부분에 동의했다.
그래서 시온이는 거실 곳곳에 담요와 방석을 깔아주었다.
소파 위에도 담요를, 바닥에도 방석 위에 덧대어 놓았다.
혹시나 밤새 짖지는 않을까, 낯선 환경에 불편해 잠을 설치진 않을까 걱정하며 침대에 누워 홈캠으로 시온이를 관찰했다.
그런데 이 녀석, 내 마음도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분리수면이 가능한 아이였다.
시바이누 성격이 독립적이라더니, 진도보다 더 독립적인 걸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는 시온이를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고, 그 자는 모습조차 귀여워 한참을 휴대폰 화면만 바라봤다.
반딧불이처럼 말이다.
4월 12일
아침에 일어나니, 걱정과는 다르게 밥그릇이 비어 있었다.
시온이는 꼬리를 아주 빠르게, 힘차게 흔들며 나를 반겼다.
귀여운 걸 보면 심장이 멎는 병도 있나? 싶은 순간이었다.
밤새 짖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도 무색하게 너무 조용했다.
“얼른 산책 가자!”
혹시 화장실이 급할까 서둘러 산책을 나섰다.
보통 강아지들은 줄을 잡아당기기 마련인데, 시온이는 내 다리 옆을 조용히 총총 걸으며 산책을 마쳤다.
심장사상충이 있어 산책은 30분 이내로 마쳐야 했다.
밥은 여전히 흥미 없어 보였고, 약 먹이느라 30분간 씨름했다.
정말 착하고 순한 아이인데, 약 먹일 때만큼은 정말 힘들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적응하겠지.
오후엔 일정이 있어 집을 4시간 비워야 했는데, 분리불안이 있을까 봐 나선 후에도 계속 홈캠을 들여다봤다.
문 앞을 5분 정도 왔다 갔다 하더니 이내 소파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역시, 천재 강아지다.
짖지도 않고 얌전히 있는 모습이 보경이와는 너무 달라 극과 극을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밖에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니, 시온이는 열렬히 나를 반겨주었다.
너무 귀여워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딱 5분. 곧바로 소파에 가서 잠에 들었다.
보호소에서 온 아이들은 처음 가정에 오면 밀린 잠을 자느라 2주 가까이 잠을 많이 잔다고 한다.
시온이도 그런 걸까.
여기선 더 많이 쉬고, 잘 먹자 시온아.
저녁 산책 때 드디어 첫 응가를 했다.
조금씩 적응해가는 듯해 나도 안심이 되었다.
4월 13일
아침 산책을 호다닥 다녀왔다.
밥은 또 안 먹기에 사료에 닭가슴살을 섞었더니 허겁지겁 잘도 먹는다.
이렇게 잘 먹을 거면서 왜 안 먹는 척하는지.
문제는 약.
아직도 잘 안 먹는다.
아침, 저녁 약 먹일 때마다 실랑이를 벌인다.
진땀이 날 지경이다.
도대체 언제쯤 내가 익숙해질까.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신이 났는지 집안을 ‘우다다’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던져 놀더니, 총총 다가와 귀여운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왕!” 하고 짖었다.
처음 들은 시온이의 짖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짖을 줄 아는 강아지였다.
만져달라는 의사 표현이었고, 그게 또 기특했다.
이러니 안 만져줄 수가 없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시온이는 혼자 거실에 조용히 있다.
놀아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내가 일하는 걸 어떻게 아는 건지 늘 얌전했다.
요즘은 산책 목줄만 들면 신나서 꼬리를 흔들고, 방방 뛰며 손에 몸을 부비고 애교를 부린다.
이런 모습,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큰일이다.
4월 14일
시온이는 평소 분리불안이 없는 줄 알았다.
매번 나갈 때도 홈캠을 보면 늘 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손님이 와서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갔는데, 그제서야 처음으로 시온이가 계속 짖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산책 갈 때 입는 츄리닝과 비슷한 옷차림으로 나갔다는 점이 떠올랐다.
혹시 이 옷을 보고 산책 가는 줄 알았던 걸까?
복도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가 내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면 “왕왕” 짖었다.
시온이도 보경이처럼 분리불안이 있는 걸까.
걱정이 됐다.
이제부턴 분리불안 교육도 천천히 시작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4월 15일
날이 갈수록 산책 전에 에너지가 넘친다.
혼자 뛰고, 장난감을 물어 던지고, 깡충 뛰다가 휘청 넘어지기도 한다.
그 모습마저 너무 귀엽다.
오늘은 나와 짝꿍이 함께 있을 때,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왕왕” 두 번 짖었다.
짖지 못하게 혼내긴 했지만, 혹시 우리 집 강아지 두부처럼 집을 지키려 애쓰게 되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산책은 여전히 잘하지만, 시온이는 겁이 많은 소심한 강아지다.
비닐 소리, 오토바이, 큰 거울… 무엇 하나만 달라도 깜짝 놀란다.
정말 이렇게까지 쫄보일 수 있나 싶다.
집에선 커튼과 하루 종일 놀고 있다.
곧 커튼이 찢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