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정이 깊어질수록

결정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by 오기우기

1주일만 임보하기로 약속하고 데려온 강아지 시온이.
그런데 2주를 더, 그리고 또다시 2달을 연장하게 됐다.
시온이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결혼을 앞두고 2세 계획까지 있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시온이가 있는 아침을 맞을 때마다, 이제는 시온이가 없는 하루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듯했지만, 강아지 입양을 반대하는 짝꿍을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털 달린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도 없던 짝꿍이 많이 양보해준 편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평일 저녁 약속을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가 생겼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데다, 마신 뒤엔 허리 통증이 있어 1년에 몇 번만 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회사 언니가 몇 년째 “너랑 술 한 번 마셔보는 게 소원”이라며 이야기하던 터라, 큰 마음을 먹고 소주 자리에 나갔다.

2시간 만에 약속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짝꿍이 내가 좋아하는 소금빵을 사와 커피를 내려준다고 했다.
“얼른 씻고 와. 같이 먹자.”
오랜만에 소주 두 병을 마셨지만, 의외로 멀쩡한 나 자신을 보며 ‘아직 쓸 만한 간이구나’ 싶었다. 평소보다 더 부지런히 씻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소금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그 순간,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치고 있는 갈색 강아지 시온이가 눈에 들어왔다.

안다만13화.png

시온이 털 색깔이 소금빵과 너무 닮아, 입안에 머금은 소금빵이 뭉쳐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이 터졌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다시 보호소로 보낼 수 있을까.’

시온이는 그저 내가 돌아와 반가웠을 텐데, 나는 그 눈빛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 자리에서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짝꿍은 “왜 울어?” 하며 어리둥절해 했고, 나는 “시온이가… 소금빵 색이랑 똑같아서…”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소금빵은 먹지 못했고, 방으로 들어가 30분 넘게 울다 잠들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 잊고 있었지만, 내 주사 중 하나가 ‘울기’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술을 마시면 요즘 가장 걱정되는 일이 눈물로 터져 나왔다. 한 번은 동생과 며칠 동안 말을 안 하다가, 술에 취해 “동생이 미워”라며 울었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도 주사가 있었겠지만, 그만큼 충격적이고 힘든 일이었기에 눈물을 쏟았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행히 짝꿍도 이유를 짐작했는지 따로 묻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같이 가자고 했다.
시온이가 돌아갈 보호소엔 이미 강아지가 많고, 앞으로도 계속 새 아이들이 들어올 텐데 그 환경을 보면 짝꿍의 마음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몇 개월을 다녔지만, 같이 가자고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대답은 빠른 거절이었다.
“왜?”라고 묻자 돌아온 말은 단호했다.
“거기 애들은 안 예쁘잖아. 다 믹스잖아.”

믹스견이라는 이유로, ‘안 예쁘다’는 이유로 마음을 닫는 그의 가치관이 너무 낯설었다.
아빠가 데려온 두부도 진도인지, 진도 믹스인지 알 수 없는 아이였고, 나는 어릴 때부터 수없이 믹스견을 봐왔지만 단 한 번도 ‘품종’이란 틀 안에서만 강아지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다 소중한 생명이었다.


며칠 뒤 또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아지를 기른다면 꼬똥 드 툴레아 같은 품종이 좋겠어. 털이 잘 안 빠진대.”
2세 계획이 없다면, 털이 안 빠지는 품종견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같은 품종이라도 성격이 다 다른데, 우리랑 안 맞으면? 계속 짖거나 분리불안이 심하거나, 물거나 하면?”
“그럼 때려야지.”

그 말에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모든 강아지가 때려서 고쳐지는 건 아니야. 왜 그렇게 말해?”
그날은 결국 작은 다툼으로 번졌다.


나는 보호소 봉사를 하며 품종과 믹스를 가리지 않고, 작은 생명을 그저 귀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짝꿍은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혹시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건 아닐까. 그게 강아지뿐일까.
아이가 태어나도 외모로 판단하거나, 잘못을 무조건 체벌로 고치려 하진 않을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가치관이 너무 다르다면, 결혼 전이라도 파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 그때 말한 그대로 생각해? 그렇다면… 결혼 못 할 것 같아.”

그제야 짝꿍은 말했다.
못생겨서 가기 싫다고 한 건 진심이 아니고, 강아지 특유의 냄새나 대변 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이 나서 그럴 것 같아 그랬다고.
품종견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믹스견을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시온이 입양을 거절하기 위해 한 말일 뿐이라고.

그리고, “결혼이 더 중요하니까… 네가 꼭 입양해야 한다면 받아들일게.”라고 했다.
나는 ‘입양 안 하면 결혼 안 할 거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짝꿍은 우리가 헤어질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강요하듯 입양을 시키는 건 내키지 않았다.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보자고 했다.


하루가 지날수록 시온이와의 정은 깊어졌다.
정이라는 건 참 무섭다.
곤히 자고 있는 시온이를 보며,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아이를 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이전 13화12화 나와 시온이, 그리고 그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