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그러네 Jun 30. 2021

청소년은 무엇으로 사는가.

고등학생 또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교 공부와 장래 계획에 대해서 고민과 스트레스가 쌓인 나머지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닌가.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자살률이 인구 10만 중 31.2명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1위라고 한다. 그런 중에 청소년 사망원인 첫째가 ‘자살’이라고 한다. 


학교 공부는 무엇 때문에 하는가. 행복하기 위하여 하는 게 공부가 아닌가. 즐겁고 행복하려고 나아가는 길에서 불행하여 고민이 쌓인다면 그게 바로 문제가 아닐까. 피어보기도 전에 스스로 생명을 거둘 어두운 생각에 이른다면 이는 사회병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일으켜야 할 교육의 현장이 사회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어린 생명이 교육과 관련한 고민을 삼키다 못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음에도 교육을 맡은 이들로부터 이렇다 할 생각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힘들어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소리는 어른들의 억지가 아닐까. 한 학생의 잘못된 선택 탓으로만 돌리며 거듭 발생할 불행 앞에 눈감을 것인가. 학교와 가정에서 매일 만나는 기대와 요구, 억압과 혼돈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사회는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나라의 교육과 미래를 설계하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원색적인 논리만 내세울 것인가.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과 상생은 어디로 사라지고 경쟁자들 간의 극심한 아귀다툼으로만 몰아가는가. 일등만 대접받는 풍토는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 할 일이 저렇게나 많은데 공부를 잘 해야만 그걸 할 수 있다는 오해와 착각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학교와 교육당국은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인성과 소양이 다음 세대의 밑천이 되어 남들을 밟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조금씩 손해보더라도 여럿이 즐거울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실력을 기르는 까닭이 남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어서임을 깨우치도록 이끌어야 한다. 나 혼자 성공하여 잘 살겠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도록 들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슬픈 뉴스를 접하고 꿈쩍도 않는 학교와 교사는 반성해야 한다.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약육과 강식이 아니라 공감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한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상생을 이야기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빅터프랭클(Viktor Frankl)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였다.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오늘 일상이 혹 이해되지 않거든, 차라리 저 먼 앞날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긴 여정 인생을 두고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꿈을 꾸었으면 한다.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으로 남들과 무엇을 나눌 것인지 상상해 보았으면 한다. 꿈이 나를 밀어올려 억압과 스트레스도 거뜬히 이겨내는 당신이 되었으면 한다. 가장 귀한 것은 나의 꿈이 아닌가. 청소년이 살아야 세상이 선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매거진의 이전글 산업화와 민주화, 그 다음 서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