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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Sep 15. 2021

눈에 보이는 대로 배운다.

 사람은 어떻게 배울까? 책보면서 깨우치고 학교에서 습득하며 살아가면서 여러 모양으로 배운다. 생각보다 우리는 ‘보면서’ 배운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목격하고 흉내내면서 내 것을 만들고 인성을 형성한다. 책이나 학교보다 눈으로 보면서 실제로 경험한 일들로부터 훨씬 많이 배운다.  

  

대선정국. 담론 주제가 위중하고 정치에는 모두 관심이 높은지라 국민의 흥미를 사로잡는다. 언론의 눈을 통해 ‘보이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필자에게 깊은 우려를 가지게 한다. 정치의 현실이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게 숙명이라지만 정도(正道)가 있고 금도(禁道)도 있는 게 아닌가. 원칙도 없고 소신도 바르지 못한 모습을 흔하게 목격하는 국민은 지치다 못해 나라의 앞길을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국민이 특히 다음 세대가 무엇을 배울까 우려가 앞선다.      


거짓말. 돌아서서 살피면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당당하게 한다. 실수로 발설한 거짓말도 끝까지 진실이라 우긴다.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길 원하지만, 혹 실수였다면 바로 사과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눈덩이처럼 불어난 산더미 거짓된 모습이 정치의 현실이라면 국민은 또 얼마나 가여운 처지가 되고 마는가. 개인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었다면 당연히 나라와 국민 앞에 거짓을 고하고 속속들이 살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숨겨서 될 일이 아니다. 디지털과 온라인, 4차산업혁명은 거짓을 드러내는 데에도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뿌리채 드러나 형편없는 창피를 당하기 전에 국민 앞에 정직해야 한다.     


말을 바꾸는 일. 평균적으로 지능이 높아져서 그럴까, 했던 말을 교묘히 바꾸며 빠져나간다. ‘법적으로는 모르지만 도의적인 책임은 지고’ 미끄덩거리며 꼬리를 뺀다. 실질적인 책임과 분명한 사리판단은 언제나 남의 몫이고 자신은 어느 틈에 그 자리에 없다. 유체이탈.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 말을 바꾸고 사라져 버린다. 거짓과 악행의 증거와 자취는 깜쪽같이 없애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으로 행동한다. 국민은 무엇을 배울까. 거짓과 위선을, 말과 훈계로 경계하기 보다 저렇듯 뉴스 속에서 목격하고 경험하며 실증적으로 체득하게 되지 않을까. 궂은 일에 걸리면 핸드폰들은 파쇄되거나 사라질 터이다. 거짓말을 하면서 태연히 눈을 부릅뜨지 않을까.      


공정과 상식, 정의와 올바름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의 눈에 목격되어야 하고 경험과 기억 속에 들어와 박혀야 한다. 보고 듣는 것은 늘 거짓과 위선인데 어떻게 공정과 정의로 세상을 물들일 것인가. 공의가 물같이 흐르려면 거짓없는 사람을 흔하게 만나야 한다. 상식이 가득한 세상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상식에 맞게 살아내야 한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나를 안다. 거짓을 저지른 당신은 그것이 거짓인 줄 스스로 안다. 필요한 건 용기. 나라가 선진국으로 우뚝 서기 위하여, 거짓을 떨치는 당신의 용기를 ‘보고’ 싶다. 사람은 본 대로 배운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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