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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Sep 22. 2021

추석정취와 치매혐오

하필 올 추석날이 ‘세계알츠하이머의 날(World Alzheimer’s Day)’과 겹쳤다. 노인이 되어 기억력이 사라지고 인식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질명, 치매(Dementia)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예방과 치료에 인류의 공동노력을 기울이자는 다짐을 담은 날이다. 전세계 노인인구 가운데 5천만 명이 넘게 앓고 있으며, 65세 이상 아홉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지역의 보건소에는 검사와 대응을 위한 ‘치매안심센터’를 둔다. 치매야말로 인간 노후 삶의 질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병이 아닌가. 생노병사의 노정 위에서 치매에 대해 완벽하게 안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들은 가히 현수막으로 정치를 한다. 의정성과를 알리며 자랑하거나 명절인사도 길거리 현수막 문구로 건다. 추석이 다가오는 어느 날, 서울 어느 지역에 내걸린 현수막은 ‘축, 실버케어센터 계획, 전면 백지화 확정’이라 적었다. 그가 속한 정당도 ‘우리의 염원, 실버케어센터 백지화 달성!’이라 외치고 있었다. 눈을 의심하였다. 세상에 축하할 일과 염원삼을 일이 따로 있지, 어르신을 돌보는 장소가 지역의 혐오시설이 되다니! 계획을 백지화시킨 일이 국회의원의 치적이 되고 정당의 자랑거리가 되다니!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가까이 모실 기회일 뿐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게 공감과 배려를 가르칠 교육기회일 수도 있을 게 아닌가. 


아니 어쩌면, 센터를 더욱 적절한 곳에 세우기 위해 계획이 무산되었을 수도 있겠다. 보다 안전하고 비용대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일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국회의원과 정당은 그런 사정을 설명하고 새로운 계획을 알리면 된다. 지역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축하’하거나 계획무산이 ‘우리의 염원’이었다고 치하할 일을 없었을 게 아닌가. 지역에 혹 실제로 아파트 가격하락을 걱정하는 민원이 있었다면, 더욱 세심하게 공간의 필요와 지역의 상황을 폭넓게 살펴 최선의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았을까. 새털처럼 가벼운 혐오정서에 편승하여 저런 현수막을 높이 거는 일은 없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세상이 거꾸로 흘러가도 국회의원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추석은 물론 가족의 시간이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정을 확인하고 나누는 좋은 명절이 아닌가. 우리 가족 안에 나타날 수 있는 질병, 치매가 내게 닥칠 때에만 무서울 것인가. 사회가 함께 겪는 어려움으로 바라보고 공동체적 배려와 공감을 발휘할 수는 없을까. 혹 아직껏 그같은 공동체적 인식에 달하지 못하였다 해도 치매를 ‘혐오’로 바라보는 일은 지나친 게 아닐까. 누구나 나이가 들고 쇠약해 간다. 인생의 황혼길에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그만큼 서글픈 일이 다시 있을까. 인생의 선배로 앞서 세월을 지내오신 어르신들을 보다 따뜻한 눈길로 섬겨야 하지 않을까. 추석의 아름다운 정취가 치매를 멀리하는 밉상스런 정서에 떠내려 가지 않기를 바란다. 어른들이 계셔서 당신이 있다.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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