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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Nov 18. 2021

마스크 수능, 두 번째.

그 날이 왔다. 어김없이 수능의 아침을 맞는다. 대한민국 청년이 10대를 마감하며 모두 겪는 통과의례 수능 앞에 온 국민이 긴장한다. 지난 18년의 공부를 이 한 날의 시험이 결정하기에 몸보다 마음이 춥다. 수험생의 마음이 떨리고 부모는 가슴을 졸인다. ‘하루만 잘 견뎌라’ 응원하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속내가 종일 아리다. 실수없이 실력만큼만 토해내고 오기를 기원할 뿐이다. 친구들이 경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오늘이 야속하다. 선생님들도 제자들의 이 하루가 안타깝고, 가족과 친지들마저 함께 관심을 모은다. 이날은 온 나라가 몸살을 앓는다. 코로나와 대선으로 어지럽지만, 수능만큼은 누구도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온 나라를 몰아넣는 절묘한 긴장에 올해도 빠져든다. 


그 ‘하루’가 문제다. 하필 이날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바닥인 건 용납되지 않는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오늘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청난 경사를 맞거나 깊은 슬픔을 당해도 수능은 수능이다. 모조건 오늘 치러야 한다. 거른다면 온통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365일 가운데 딱 하루만 치르게 하겠다는 생각은 누가 지어냈을까. 여지껏은 그랬다 하고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교육과 관련된 시스템을 바라보는 정책적 시선은 왠지 늘 느슨하고 게으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데 우리 수능은 언제나 그 자리다. 말랑말랑하고 총기발랄한 10대에게 일 년에 적어도 서너 차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대학이 무슨 성역도 아닌데,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상태를 체크하면서 오늘처럼 불필요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가. 


수능의 역할도 문제다. 실력평가인가 소양인증인가. 대학입시제도에 설정된 관문이지만, 실력을 평가하여 줄세우기의 도구로 삼는 일은 지극히 구시대적이다. 다음 수준의 학습을 견뎌낼 수 있겠는지 기본소양을 인증하는 정도로 그 기능을 조절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놀랄만큼 다양해진 바에 수능의 결과로 학생의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에 어울리지 않는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 스산한 아침에 목줄을 조이듯 서 있는 수능의 옛스러운 모습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났다. 대학입학을 위한 기본소양을 살피는 새로운 수능은 일 년에 수차례 설정하여, 학생도 교사도 훨씬 편안하고 유연하게 치러야 한다. 실수를 돌아보며 수정해 가는 값진 경험을 교육과정 가운데 허용해야 한다. 일년에 딱 하루 로또처럼 만나는 수능은 이제 접어야 한다.


한 번 시험을 잘 쳤던 경험을 평생 붙들고 국민 앞에 무례하게 서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지 않는가. 인성과 소양의 바닥을 보았지 않은가. 제도와 시스템은 세대와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오늘을 향해 달려온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기울인 수고와 노력은 반드시 결실과 보상으로 돌아오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쉬지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은 사람이 끝내 이기는 나라를 세워야 한다. 수능과 대입제도는 오늘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다음세대가 살아야 나라가 사니까.


장규열, 한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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