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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Nov 30. 2022

대학입시, 어찌해야.

‘나라의 교육은 대학입시가 망친다.’ 공교육이 유치원, 초등과 중등교육을 잘하고 싶어도 대학입시가 버티고 있어 힘들다고 한다. 학교는 치열한 경쟁보다 함께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지만, 대학입시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선생님은 친구들 사이에 화목하길 원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점수싸움의 늪으로 빠져만 든다.


아름다운 공동체적 가치를 가르치고 싶어도 수능을 맞이해야 하는 현실의 벽 앞에서 경쟁적일 수 밖에 없다. 수능이 방금 지나갔지만, 학원가에서는 벌써 특정대학 어느 학과 에 들어가려면 수능점수 몇 점이 필요하다는 둥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경쟁과 눈치싸움으로 몰아세운다. 대학숫자가 많이 늘고 인구절벽으로 학생숫자가 대폭 줄었지만, 대입의 현장은 수십 년 전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공교육과 대입현장의 부조화를 교육당국은 인지하고 있는지.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아닐까.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버젓이 있으면서 대학입시가 빚어내는 사회, 문화, 교육적인 문제와 현상에 대하여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회적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대입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데는 교육계의 반성과 함께 국가적인 숙고가 있어야 한다.


대입제도와 시스템이 국가공교육의 지향점에 도움이 되기보다 다소라도 방해가 된다면 이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히 조정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장래와 교육의 앞날을 위하여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가 제안하고 시민과 학생이 폭넓게 참여하는 국민토론이 일어나야 한다.


나라 안에 ‘교육을 위한 담론’이 태부족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 구호일 뿐 누구도 교육이 세워 올릴 백년을 고심하지 않는다.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가 많아서라는 핑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나라의 미래를 담보해야 할 교육을 등한시하는 사회는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국민을 길러낼 뿐이다.


따뜻하고 풍성한 교육담론을 공교육이 수다히 만들어 열심히 운영하면서도 거대한 장벽 ‘대학입시’와 함께 만사가 물거품이 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두고 볼 터인가.


선구자 한 사람이 제창하여 해결할 문제도 아닌 바에야, 국가적인 소명의식을 가지고 사회적인 담론을 일으켜야 한다. 나라가 풀어야 할 필수과제임을 인식하고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으기 위해 우선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대학은 어떤가.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면서 온라인과 비대면교육을 경험하였다. 대학 강의실의 존재이유와 연구개발과 지식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터이다. 대학으로 들어오는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나름의 의견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믿는다. 나라의 교육과 고등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도 공적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교육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하기 어렵다.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대학입시 제도개선에 임해야 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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