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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Mar 08. 2023

그걸 못하면 모두 죽는다.

‘벗꽃피는 순서로 죽는다’고 야단이다.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이 남쪽으로부터 죽어나갈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인구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간단다. 그건 벌써 오래전부터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학은 게을렀을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정부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살아온 게 수십년이 아닌가. 


대학을 잘못 운영하면 재정지원을 중단하는 게 나라의 규정이었으니, 사고만 치지 않으면 학교는 그럭저럭 굴러갈 판이었다. 온 라라가 혁신과 개혁을 외쳐도 대학은 그냥 그렇게 서 있기만 했다. 그런데 이젠 힘들다는 거다. 학생숫자가 눈에 보이게 쪼그라들 판이니 나라가 도와주는 걸로만 버티기에 힘들어졌다는 게 아닌가. 아직도 홀로 일어나 보겠다는 대학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은 그전에도 망해 있었다. 거의 모든 대학에 거의 모든 학과가 있다. 같은 종류의 청년들을 모든 대학이 만드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마다 바라보는 바가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같은 무늬로만 존재하는 대학들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같은 전공은 같은 내용을 담는다. 교수가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건 핑계일뿐, 같은 껍데기가 같은 영역을 다루지 않겠는가. 


모든 대학이 같은 전공학과들을 모두 가진다는 건, 대학마다 특성이 없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우리 대학은 그래서 이미 죽어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하면서 오래도 버틴 셈이다. 이제는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 바뀌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순서대로랄 것도 없이 모두 사라지게 되어있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그간 모방하고 추격하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혁신하고 창조하며 달려야 한다. 대학은 더 이상 무엇인가 많이 아는 사람을 기르는 게 아니라, 작은 무엇이라도 새것을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암기반복형 인재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인성을 길러야 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도 강의 중심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의 거친 물결을 만나기 전에 학생들이 실전과 검증을 경험해야 한다. 성공의 짜릿함도 느껴봐야 하고 실패의 쓰라림도 일깨워야 한다. 


지방대학은 지역과 함께 살아내야 한다. 대학은 지역에서 문제를 탐색하고 지역담론에 참여하여 지역과 더불어 호흡해야 한다. 교수들이 지역에서 연구프로젝트를 발견하고 학생들이 지역에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 몇 년을 보내며 가르치고 배운다면서 지역과 담을 쌓은 모습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망각한 처사가 아닌가. 대학이 지역사회와 문화에 흠뻑 젖어야 하고 지역은 대학으로부터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지역과 대학은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소멸의 위기는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야 한다. 대학이 있으면서도 지역의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지역은 함께 부끄러워야 한다. 젊은이들로 넘치면서 젊은이가 없다는 불평이 말이 되는가. 지역이 대학을 품고 대학이 지역으로 나서는 공동체를 회복해야 한다. 


그걸 못하면, 지역도 대학과 함께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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