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소파 방정환은 ‘우리의 미래는 어린 꼬맹이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작고 어린 아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다고 생각해 ‘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와 생각을 같이 했던 어른들이 모여 어린이를 위한 활동을 한 끝에, 우리 정부는 1957년에 ‘어린이헌장’을 제정했다.
7개 조로 만들어진 헌장은 전문에 ‘모든 어린이가 차별없이 인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겠다고 하였다. 1922년에 처음 생겼던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정치가 혼탁하고 환경이 무너지며 사회가 어지러운 오늘, 우리는 어린이날을 어떻게 맞고 있는가. 세상만사에 묻힌 나머지, 어린이가 우리의 내일임을 잊은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필자는 한때, 우리에게 ‘어린이날’이 따로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 미국인 친구의 한 마디에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한국은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어린이날로 삼는가, 우리는 날마다 어린이날인데..’
우리에게 어린이는 정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인가.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놓고 흥정하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자라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잃었던 나라를 찾기 위해서도, ‘어린이가 잘 자라야 한다’고 했던 그 어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사회가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졌다. 어린이날을 맞으며 드는 아쉬움은 ‘동요’가 사라진 안타까움에 있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밝고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배우면서 자라야 한다.
그 많던 어린이들만의 노래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지낸다. 올해는 한국의 첫 동요로 인정받는 윤극영의 ‘반달’이 탄생한지 100년 되는 해라고 한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쓰인 낱말들과 표현방식이 옛스럽기는 해도 아이들만 가지는 상상의 날개를 한껏 달아주었던 동요가 아닌가. 2절 가사는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고 불러 어린이들이 가슴에 희망을 품고 자라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어른의 삶이 팍팍할수록 어린이의 내일을 기억하는 일상이었으면 한다. 어린이들의 처지와 나날을 배려깊게 살피면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충분히 마련해 주어야’ 하고 어린이는 ‘위협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하고 안전을 지켜주어야’ 한다.
미래를 향한 확실한 투자로서 어린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경쟁과 다툼보다 상생과 협력의 묘미를 일깨워 내일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헌장은 놀랍게도 어린이를 ‘세계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