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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그러네 May 22. 2024

흘려보낸 부부의날.

함께 오래도 살았다. 달콤하게 찾아왔던 사랑을 지키기로 다짐하며 둘이서 건너온 날들은 어디로 다 가버렸을까. 만나고 헤어진 수다한 얼굴들 가운데 아직도 곁을 지키고 있는 당신과 나는 어쩐 영문일까. 헤아릴 수도 없을 이야기들 가운데 늘상 등장하는 당신은 내게 누구란 말인가. 살을 부비고 살아도 속속들이 다 안다고 할 수도 없는 당신은 누구인가.


사람이 생겨난 것도 신기한 일이었는데, 생각할수록 신통한 것이 부부라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이들마저 있고 보면 둘이서 만들어온 세상이 신묘막측하다. 울고 웃으며 놀라고 화도 내지만,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가운데 빚어온 시간의 흔적은 부정할 방법이 없다. 내 탓이고 당신 덕이며 함께 걸어온 발자욱이 고맙고도 미안하다.


둘이서 만들지만 하나인 듯 살아야 하는 게 부부라 한다. 부부의날이 21일인 것도 둘이서 하나를 만들라는 뜻이라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가. 박자가 맞기는커녕 갈수록 엇나가기만 하는 당신과 내가 아닌가. 하나가 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게 아니었을까. 하나는 어차피 못 이룰 것이니 참고 견디며 살아가겠노라는 소박한 다짐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적당히 포기하고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와 선 심정으로 체념하고 그냥 일상을 대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공연히 부딪히지 않고 쓸데없이 간섭하지 말며 남도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듯 그렇게 그렇게 지내는 게 서로에게 이롭지 않을까. 다그치지 말고 침범하지도 않으며. 사랑은 꺼져버리고 관심도 전혀 주지 않으며 한 울타리에 사는 당신과 나는 부부인가 아닌가.


‘부부’인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아이들 탓에 산다는 건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함께 사는 김에 뭐라도 만들어가는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도 끈끈한 마음이 있지 않은가. 넘치는 열정이야 식었겠지만 샘솟는 호기심은 그래도 있지 않은가. 치열한 시샘은 잊었더라도 잔잔히 흐르는 관심은 살려 두었겠지. 핏대어린 싸움을 이제는 못하겠지만 마음에 담지못할 미움도 이제는 없다.


부부가 되어 함께 바라보며 불쌍히 여길 이웃이 저기 있지 않은가. 부부가 되어 마음모아 일으켜 세울 다음 세대가 거기 있지 않은가. 뜨겁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정겹게 나누어줄 넓은 아량이 이제는 생겨야 한다.


서로만 바라보기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이 되어. 부부의날을 한 번쯤 기억했으면 한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어 이제 서로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지 새겨보았으면 싶다. 받으려고만 하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나누기에는 인색하지 않았는지. 당신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어주는 내가 될 수는 없겠는지. 세상에 완벽한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음을 어째서 애써 모르는 척하며 살아왔는지.


어차피 부족하여 도우며 살아야 했음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지. 격려하고 북돋우며 응원하고 일으키는 당신이 되고 부부가 되시길.


늦었지만, 부부의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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