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웹사이트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였다. 첫 페이지에서 나이와 키, 몸무게 등 간단한 정보를 묻는다. 그러면, 사고를 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치는 경우 어느 해 몇 월 며칠에 죽을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날짜가 아니겠지만, 그런 날짜를 구체적으로 대해 본 것이 처음이었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 저런 시각이 있겠구나!` 싶은 자각이 새삼 드는 것이었다.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우리는 시간이 아득한 `과거`에서 시작하여 지금 이처럼 누리고 있는 `현재`가 되었다가 알지 못하는 `미래`가 되어 흘러간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시간이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만 흐른다면, 그런 시간은 나의 의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가만히 두어도 흘러가는 시간, 그에 대하여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다만 객체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어차피 모르는 과거였으며, 그냥 언제나 곁에 있는 현재이며,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가올 미래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늘 시간을 놓치며 사는 것은 혹 아닐까. 어찌어찌 흘려버린 세월에 아쉬움이 쌓이고, 갑자기 다가온 오늘에 당혹스러우며, 손님처럼 다가올 내일을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한 것이다.
질문이 생긴다. 과연 시간은 그렇게 흐르는가.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흘러가느라 사람은 정말로 시간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과거는 아득한 옛날이며 겨우 현재에 살고 있을 뿐 미래는 정말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미래는 그냥 기다려야 오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 미래는 눈 앞에 펼쳐지지 않았을 뿐 이미 시작된 것은 아닐까 싶다. 그 미래 어느 날,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져 갈 그 시간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미 시작한 그 시간이 우리를 향하여 넘실넘실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이미 시작한 시간이 `미래`이고, 우리를 향하여 한 순간 한 순간 다가와서는 `현재`가 되어 우리를 만났다가, 그 시간을 넘어 끝내 `과거`가 되어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은 미래-현재-과거의 순서로 흐르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맞는 모든 중요한 시간들은 이들을 상상하며 생각하는 순간 이미 시작되었다.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시험들이 그렇고 청년들에게는 결혼이나 취업이 그럴 것이며 장년들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이 모두 그럴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미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에게 다가와 현재가 되었다가 과거가 되어 사라져 가는 것이다.
시간의 순서가 이렇게 뒤바뀌고 보면, 우리가 할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 시간에 관해서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이 바뀌는 것이다. 그냥 흘려보낼 시간이 아니라 이제 맞이할 시간이 되어 신중함이 더해질 터이다. 미래는 아무렇게나 흘러올 시간이 아니라 생각 깊게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가올 내일에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빛나게 찾아올 미래를 알차게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순간 불현듯 찾아오게 할 것이 아니라, 넘실대며 다가오는 그 시간을 맞을 차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흐르는 시간에 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시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부정적인 미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나라의 미래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들 개인들의 미래도 이미 어디선가 시작되었다. 나라와 개인에게 이미 시작된 그 미래에 대하여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잘 생각해 볼 일이다. 이에 어떤 준비를 하여 그 미래가 어느 모습의 현재로 다가오게 만들어 낼 것인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린 것이다. 미래는 시작되었다.